[인사이드 스토리]테슬라가 이끈 원통형배터리 주력되나
생산 단가 낮추고 주행거리 늘려
최근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오는 2026년까지 오창산업단지에 총 4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6월 이곳에 73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후 추가 투자를 발표한 것인데요. LG엔솔 오창공장은 '4680 배터리'로 잘 알려진 원통형 배터리 생산라인이 있는 곳입니다.
원통형 배터리에 주목하고 있는 국내 업체는 LG엔솔만이 아닙니다. 삼성SDI도 원통형 배터리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리버 집세 BMW 회장을 만나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죠. BMW는 2025년부터 양산하는 전기차 모델에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입니다.
배터리 업체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수요에 따라 생산을 결정합니다. LG엔솔과 삼성SDI가 원통형 배터리에 투자를 늘린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테슬라만 사용하던 원통형 배터리는 어떻게 차세대 배터리로 떠오른 걸까요.
원통형이 뭐길래
우선 원통형 배터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죠. 배터리 셀 형태(폼팩터)는 각형, 파우치형, 원통형 세 가지가 있습니다. 원통형 배터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AA형 배터리를 떠올리면 됩니다. 탁상시계나 리모컨 등 소형 전자기기에 많이 사용하는 원기둥 모양 건전지와 모양이 같습니다.
원통형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입니다.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말듯 양극판과 음극판을 구부려 마는 방식을 사용해 각형이나 파우치형보다 제조가 쉽습니다.
주로 가전기기에서 사용하던 원통형 배터리를 전기차 영역으로 가져온 건 테슬라입니다. 2008년 테슬라가 전기차 '로드스터'에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한 것이 시작입니다. 현재까지도 테슬라만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고,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각형이나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통형의 가장 큰 장점은 규격이 표준화돼 있다는 점입니다.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각형이나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하기 위해선 전용 제품을 새로 개발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는 처음 전기차를 만들 당시 스타트업이었기에 값비싼 맞춤 배터리를 여러 개 제작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원통형 배터리는 표준화된 크기로 대량 공급되고 있었기에 전용 제품을 개발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또 공급처도 각형이나 파우치형에 비해 많아 가격이 저렴했죠. 리비안이나 루시드 모터스 같은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테슬라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왜 원통형이 아닌 각형이나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할까요. 이유는 원통 모양에 있습니다.
배터리는 셀을 모아 모듈을 만들고, 이를 합쳐 팩 형태로 전기차에 탑재합니다. 원통형 배터리는 모양이 원형이다 보니 각각의 셀 사이에 공간이 남죠. 이를 '불용공간'이라고 하는데요. 원통형 배터리는 가뜩이나 다른 폼팩터보다 셀 크기가 작은데 불용공간까지 많다 보니 전체적인 밀도와 출력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전기차용 배터리로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죠.
게임체인저 '4680'
전기차 업체들의 외면을 받았던 원통형 배터리는 얼마 전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향후 출시할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를 선택했는데요. 그렇다면 원통형 배터리가 다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테슬라가 지난 2020년 '배터리데이'에서 발표한 4680 배터리 때문입니다.
4680 배터리는 지름 46㎜, 높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를 의미합니다. 원통형 배터리는 규격이 일정해 지름과 높이로 이름을 붙입니다. 현재 테슬라에 탑재되는 2170 배터리는 지름 21㎜, 높이 70㎜라는 뜻이죠.
테슬라가 야심 차게 발표한 4680 배터리는 전기차 배터리에 혁신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테슬라에 따르면 기존 2170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를 5배, 출력을 6배 높인 제품이죠. 이를 바탕으로 생산 비용을 54% 절감하고, 주행거리는 16% 개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셀 크기를 키워 에너지 밀도를 높였다"며 "셀 크기를 키워 팩에 들어가는 개수를 줄였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가 팩 제조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보다 비싼 이유는 배터리 때문입니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로 알려져 있죠. 이론대로라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는 전기차 업체들의 고민인 주행거리와 배터리 단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셈입니다.
전기차 업체 입장에선 배터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4680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 Y의 경우 최대 5500달러(약 708만원)를 절약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4680 배터리가 소개된 이후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하는 업체들이 많아졌습니다.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죠. 테슬라는 '모델Y'를 시작으로 4680 배터리를 확대 적용할 계획입니다. BMW도 2025년 출시할 전기차 플랫폼 '뉴 클래스(Neue Klasse)'에서 각형 대신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했습니다. 이 밖에도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등 여러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원통형 배터리 탑재를 결정했죠.
원통형 배터리는 향후 배터리 업체들의 핵심 폼팩터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규모는 지난해 34억3000만셀에서 2025년 87억1500만셀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장대석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4680 원통형 배터리는 향후 전기차 시장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며 "각형과 파우치형을 차용하는 완성차 업체들은 원가절감이 된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와의 가격 경쟁에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투자 늘리는 이유
원통형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 잠재력이 높은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핵심이기도 합니다. 내년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고 전기차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면 미국 내 전기차 보급율은 급속도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테슬라는 지난달 미국 전기차시장에서 판매량 기준 점유율 60%를 기록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죠.
테슬라는 파나소닉으로부터 가장 많은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테슬라의 높은 판매량을 바탕으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북미 점유율 48%를 차지했습니다. 파나소닉의 글로벌 점유율이 7.9%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테슬라에 대한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LG엔솔이 북미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선 파나소닉을 꺾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테슬라는 4680 배터리를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정 물량을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를 LG에너지솔루션과 파나소닉 등으로부터 공급받을 계획이죠. 하지만 수율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양산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테슬라가 4680배터리 양산에 계속 어려움을 겪는다면 결국 LG엔솔과 파나소닉으로부터 공급받는 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두고 LG엔솔과 파나소닉이 '배터리 한일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나소닉은 2024년 일본 공장에서 4680 배터리를 양산할 예정입니다. LG엔솔은 이보다 빠른 내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인데요.
LG엔솔이 오창공장 투자를 늘린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파나소닉보다 먼저 공격적인 양산에 돌입해 북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입니다. 여기에 더해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투자 가치도 상승했죠. LG엔솔 입장에선 손해보는 장사가 아닌 셈입니다.
삼성SDI가 원통형 배터리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죠. 특히 BMW가 2025년부터 지름 46㎜의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결정한 것이 큰 이유로 보입니다. 삼성SDI는 지난 2019년 BMW와 10년간 배터리를 납품하는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SDI는 천안공장에 지름 46㎜ 원통형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양산 목표 시점도 BMW의 생산 시점과 비슷한 2025년이죠. 일단 파일럿라인을 짓고 테스트 등을 거쳐 정식 생산라인을 지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원통형 배터리 생산기지인 말레이시아 세렘반 공장에도 1조7000억원 규모를 투자해 배터리 2공장을 증설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업체들은 추가적인 원통형 배터리팩 내부 불용공간을 활용, 화재를 예방하거나 배터리 출력을 높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원통형 배터리가 전기차 배터리계의 대세로 떠오를 수 있을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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