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업(業)의 본질’ 놓친 왓챠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가 자금난과 줄어드는 이용자 속에서 대기업에 매각 기회만 엿본 채 유령처럼 시장을 떠돌고 있다. 왓챠는 한때 ‘한국의 넷플릭스’로 주목받으며 빠르게 성장했고 내년 상장을 목표로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까지 추진했다. 그러나 경쟁 심화 속 투자시장까지 얼어붙자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왓챠는 오래전부터 콘텐츠 기업이 아닌 테크 기업 혹은 콘텐츠 유통 기업을 표방했다. 경쟁사가 없었던 OTT 태동기엔 유효했던 전략이나 경쟁이 심화한 지금, OTT 업체의 생존 여부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서의 기술력이나 콘텐츠 유통 역량이 아닌 자체적으로 제작한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의 경쟁력에서 결정된다. 경쟁이 격화되자 자체 제작 흥행 IP가 없던 왓챠가 와르르 무너진 이유다.
왓챠는 해외 유명 콘텐츠를 국내에 독점으로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회사는 일명 ‘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에만 있는 콘텐츠’를 내세웠다. HBO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 국내 이용자가 쉽게 볼 수 없던 콘텐츠를 주요 해외 콘텐츠제공업체(CP)와 계약해 공개하며 왓챠는 초기 국내 이용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웨이브 등 국내 OTT 업체가 속속 등장해 CP와 계약을 맺고 동일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졌다. 여기에 HBO가 자체 OTT ‘HBO맥스’를 내놓기 위해 왓챠 등 타 플랫폼과 지난해 말 자사 콘텐츠의 계약을 끝내며 이용자 이탈이 추가로 이어졌다. 결국 콘텐츠 유통은 OTT 회사 고유의 능력이 아닌 자본력의 문제이며 언제든 제작업체 혹은 더 큰 자본을 지닌 경쟁자가 나타나면 무효가 되는 역량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2011년 영화 콘텐츠 평가 및 추천서비스 ‘왓챠피디아’로 시작했던 왓챠는 콘텐츠 기업으로 나가지 못하고 길목에서 좌절했다. 실제 왓챠플레이는 2016년 출시됐으나 자체 제작 콘텐츠는 지난해 말부터야 ‘좋좋소’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처음 공개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점은 왓챠가 뒤늦게 OTT 생존 전략을 파악했음에도 대기업 자본 없이 사업을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으로서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이다. 업계에선 왓챠가 올해 초 내놓은 웹드라마 ‘시맨틱 에러’가 동성애 장르의 마니아 팬층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받았으나 기본 가입자 풀 자체가 적어 추가적인 흥행에 실패한 점이 아쉽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미 시장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상태에서 이런 콘텐츠가 시장을 뒤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OTT업계 한 관계자는 “박태훈 왓챠 대표가 뒤늦게 2020년에서야 오리지널 콘텐츠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 3년간 웹드라마, 다큐 등 다양한 자체 제작 콘텐츠를 생산하려고 노력했으나 자본력이 부족해 결국 규모의 경제에서 경쟁사에 밀렸다”라며 “같은 콘텐츠도 더 큰 가입자 규모에선 파급력이 달랐을 것이다”라고 했다. 구독자 수 격차가 적었던 초창기에 파급력 있는 작품을 내놓았어야 했는데 왓챠가 때를 놓쳤다는 말이다.
콘텐츠 제작사가 아닌 유통 플랫폼으로 시작한 넷플릭스 역시 IP와 관련해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 할리우드 제작사가 자체 OTT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디즈니의 ‘마블’ 시리즈나 드라마 ‘프렌즈’ 등 인기 IP가 넷플릭스 플랫폼을 떠나 이용자가 이탈하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선 디즈니나 HBO와 달리 할리우드 기반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유통 플랫폼으로 시작한 넷플릭스 역시 ‘IP 콤플렉스(자격지심)’을 극복하고 콘텐츠 제작 업체가 되기 위해 한국 자체 제작 콘텐츠에만 한 해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며 고군분투 중이라고 평가했다. 2012년 드라마 ‘릴리해머’를 시작으로 빠르게 자체 제작 콘텐츠를 내놓은 넷플릭스와 달리 왓챠는 적절한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왓챠는 올겨울 온몸으로 그 결과를 견디고 있다. 업(業)의 본질을 너무 늦게 깨달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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