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는 외침에도”…신당역 사건 100일, 여전한 직장내 성폭력

조희연 2022. 12. 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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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100일을 하루 앞둔 22일 직장갑질119는 사건 직후인 지난 9월2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직장내 젠더폭력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 25건을 공개했다.

 단체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남녀간 사랑싸움인 것처럼 다루거나 '일부' 남성의 비행 행위인 것처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면서 "이 사건은 직장 내 남녀 간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원인이 된 젠더폭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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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본사에 있는 사장이 지방에 내려와 회식을 하자고 해 술을 몇 번 마셨습니다. 그 후 서울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게 하고 호텔로 오라고 해 거절했습니다. 자꾸 ‘사적으로 만나보자’, ‘애인 하자’는 얘기를 해서 연락을 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다가 원청 직원의 성추행으로 인해 퇴사하게 됐습니다. 가해자는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했습니다. 업무 지시를 하면서 제 허리를 쓰다듬거나 둘이 있을 때 머리카락을 떼어주겠다며 가슴으로 손을 뻗기도 했습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회사에 가해자의 성희롱, 성추행을 신고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제가 퇴사했습니다.”
지난 9월 20일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100일을 하루 앞둔 22일 직장갑질119는 사건 직후인 지난 9월2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직장내 젠더폭력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 25건을 공개했다. 단체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남녀간 사랑싸움인 것처럼 다루거나 ‘일부’ 남성의 비행 행위인 것처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면서 “이 사건은 직장 내 남녀 간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원인이 된 젠더폭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살려달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제보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강압적 구애가 8건으로 가장 많았다. 성추행에 해당하는 원하지 않은 신체접촉 6건, 외모 통제 5건, 악의적 추문과 성차별·기타가 각 3건으로 뒤따랐다.

단체는 “젠더폭력은 일터의 약자인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면서 “현재 일터에서 발생하고 있는 젠더폭력은 성적 농담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10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내 성범죄 경험을 물어본 결과 여성의 37.7%가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22.5%)보다 15.2%포인트 높은 수치다. 비정규직(33.8%)의 비율 또한 정규직(25.8%)보다 높았다.

성추행·성폭행의 경우 여성(25.8%)이 남성(10.9%) 대비 두배 이상 높았고, 스토킹은 여성이 13.0%, 남성이 9.0%을 기록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든 항목에서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성희롱 경험 비율이 38.0%, 성추행·성폭행은 29.5%, 스토킹은 16.5%로 집계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단체는 직장 내 젠더폭력에 대해 사용자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경우 사용자는 사실관계를 조사해야 하고, 성희롱을 신고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신고 후 △지체 없이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하면 사용자에게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제보된 사례에 따르면 신고자들은 이후 퇴사 강요 등 또 다른 괴롭힘의 피해자가 됐다. 제보 25건 중 사업장에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한 사례는 11건이었다. 이들 중 7건은 신고 후 불리한 처우를 당했다. 나머지 4건은 신고를 했지만 사용자가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는 등 의무를 위반한 사례였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젠더폭력을 절차에 따라 신고해도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가하는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다른 피해자의 신고를 막는 악순환을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직장갑질119 박은하 노무사는 “노동자 보호 의무가 있는 사용자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면서 “사업장 내 조직문화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성희롱 예방교육 등 법정의무교육을 통해 폭력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피해자의 노동권이 침해되지 않고 평범했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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