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20% 떨어지면 대출자 5% 집 팔아도 빚 못 갚아”
집값 20% 내리면 고위험 가국 비중 4.9%로 확대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2696.6조…GDP의 125.9%
집값 30% 하락시 부동산PF 부실 위험 증대
집값이 올해 6월 말보다 20% 떨어지면 대출자 100명 중 5명은 집, 주식 등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집값이 30% 하락할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유동성 위험이 증폭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은행은 22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금리 상승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조정될 경우 가계의 순자산이 크게 감소하면서 고위험 가구 비중이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각 가구가 보유한 주택 가격이 올해 6월 말과 비교해 20% 하락하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또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 상환이 어려운 고위험 가구의 비중이 전체 대출 가구의 3.9%에서 4.9%로 확대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위험 가구는 자산대비부채비율(DTA)이 100%를 초과하는 가구를 뜻한다.
다만 한국은행은 당장 부동산 시장 경착륙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이정욱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장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부동산 가격이 37~38% 정도 올랐는데, 올해 11월까지 10.4% 떨어졌기 때문에 급락이라기보다는 조정 국면”이라며 “아직 이 정도 하락은 금융기관이나 가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집값 조정이 현실화될 경우 비은행 금융기관의 유동성 리스크(위험)는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이 -0.3%로 떨어지고, 주식과 주택가격이 최고점 대비 각각 50%, 20%씩 하락하는 극심한(severe) 충격을 가정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일부 보험·증권사와 저축은행의 자본비율이 규제 기준을 밑돌았다고 분석했다.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올해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2696조6000억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25.9%에 달했다. 이 가운데 부동산 기업금융은 1074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3%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비은행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건설·부동산업 등 부동산 관련 기업대출과 대출·유동화증권을 비롯한 PF 대출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부동산 기업금융이 급증했다”고 평가했다. 주택가격 상승 등에 힘입어 건설·부동산업 대출은 9월말 기준 580조 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다. PF대출도 9월말 기준 116조6000억원으로 22.8% 증가했다.
문제는 가파른 금리 상승, 부동산 경기 둔화, 레고랜드발(發) 자금시장 경색이 맞물리면서 부동산 기업금융의 유동성·신용 리스크가 크게 부각됐다. 신용경계감이 높아지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금리는 올해 3월 말 2.2%에서 11월 말 8.1%까지 급등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PF유동화증권 상당수가 내년 상반기 이전에 만기도래할 예정이라 대내외 충격 발생시 유동성 리스크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2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PF유동화증권 규모는 30조원이 넘는다.
부동산 경기 둔화로 부동산 기업대출과 PF대출의 부실화 우려도 커졌다. 건설업‧부동산업은 부채비율이 다른 산업에 비해 높은 데다, 한계기업 비중도 상승하는 상황에서 미분양주택 증가, 건설비용 상승, 임대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이 부실화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집값이 15% 하락하고 부동산 경기 부진이 1년으로 단기에 그칠 경우 금융기관 전반의 자본비율이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부동산 경기 위축이 단기에 그치더라도 PF 관련 유동성 리스크가 확산하는 경우에는 자본비율 하락 폭이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집값이 30% 떨어지고 부동산 경기 부진이 3년 이상으로 장기화되면 대부분 업권에서 자본비율이 상당폭 하락하고 규제 기준을 밑도는 금융기관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기업금융은 과거 PF 부실사태 당시와 비교할 때 부실 정도가 크지 않고 금융기관 복원력도 양호하다”면서도 “다만 금리가 높아지고 주택가격 하락세가 가파르다는 점, PF유동화증권을 통해 자본시장과 부동산 PF대출 간 연계성이 높아진 점 비은행권의 익스포저가 확대된 점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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