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대바라기’ 여당엔 미래 없다
금태섭 변호사, 前 국회의원
與 경선 룰보다 변경 절차 문제
하품하면 보고 방식 바뀔 만큼
대통령 의중이 갖는 무게 막강
하향식 의사결정은 매우 위험
文의 ‘장자연 사건’ 타산지석
여당의 변화 진정성 의문 자초
공무원으로 일하던 때 선배에게서 들은 믿지 못할 일화 한 토막이 있다. 한창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프레젠테이션이 유행하던 시절, 어느 날 약속이나 한 듯 전 부처가 종이에 인쇄한 문서를 이용하는 형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청와대에서 파워포인트로 보고를 받던 대통령이 지루하다는 듯 창밖을 내다보며 하품을 하셨기 때문이란다. ‘윗분이 싫어하시는구나’라고 짐작한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바꾼 것이다.
물론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준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과다하게 소모된다는 점, 깊이 있는 토론보다 일방적인 보여주기에 그치기 쉽다는 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몸짓 하나에 보고 형식이 바뀌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그냥 갖다 붙이는 핑계에 불과하게 된다. 진짜 이유는 대통령의 뜻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의중이 갖는 힘과 무게를 알고 있는 공무원으로서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박하기 어려웠다. 물론 속으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후진적인가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규칙 변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오간다. 20년 가까이 사용하던 당원투표 70%, 여론조사 30% 룰이 당원투표 100%로 바뀐다고 한다. 여론조사 배제 이유로는 ‘당의 대표는 당원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게 당연하다’는 점이 제시된다. 역선택의 위험성, 다른 나라의 관행 등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구실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원투표 비중을) 100%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진 순간 대다수가 전당대회 규칙을 바꾸는 진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발언 전에는 규정을 바꾸더라도 당원투표 90%, 여론조사 10%로 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정치 상황에서 정당 대표를 뽑을 때는 여론조사 결과를 일부라도 반영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과거 당원투표만으로 전당대회를 했을 때 민심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고, 조직적인 ‘지지자’ 동원과 같은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실제로 역선택에 의해 조사가 왜곡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런데도 전당대회 규칙은 정당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당원투표만으로 대표를 선출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지금 게임의 룰이 바뀌는 과정을 그런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판단해서 결정하고, 그 뜻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앞에 나서서 그럴싸한 설명을 덧붙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론이 국민의힘의 결정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공조직인 정당의 의사결정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지극히 후진적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을 비롯해 국민의힘 외부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뜻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주어진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부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학의, 장자연 사건을 놓고 ‘공소시효가 끝난 일도 사실 여부를 가리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특정 사건의 수사에 대해 언급한 것도 부적절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일을 조사하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법을 넘어선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 내에서는 아무런 이견도 나오지 않았고, 이 지시는 충실히 실행됐다. 그 결과 불법 출국금지 논란과 같은 사달이 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당무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공언을 해 왔다. 법적으로는 한 명의 당원에 불과하지만, 대통령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한 말 한마디에 따라 국민의힘 전체가 좌지우지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뽑힌 당 대표가 어떤 권위를 가질 수 있으며 어떻게 당이나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탄핵 이후에도 보수 정당이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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