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 취급받던 다주택자, 시장 연착륙 ‘구원투수’로 재등장
아파트 매입 임대사업제도 부활
대도시 중장기 부동산 투자 가능
정부가 지난 21일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내년도 파격적인 부동산 규제완화 방안을 예고하자 극도로 위축된 주택시장에 일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날 주택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 그동안 투기꾼 취급을 받던 다주택자의 수요를 진작시키는 정책을 핵심으로 내놨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대출 규제를 완화해 무리하게 기존 집을 팔지 않아도 버틸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자본 여력이 있으면 집을 추가로 사도 세금 부담이 늘지 않도록 했다. 특히 ‘아파트 매입 임대사업제’를 부활시켜, 다주택자들이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지고 있어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있도록 돌파구를 마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시장에선 이번 대책이 다주택자에 대한 정부의 달라진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 정부에선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보고 규제했지만, 현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필요한 ‘구원투수’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토교통부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인 부동산 규제를 정상화해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한 부동산 규제를 정상이 아닌 ‘징벌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정상화’해야 최근 급격하게 위축된 주택시장이 살아나면서 더 큰 경제위기를 막고, 시장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을 위한 조세부담 완화가 국민 주거비 경감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전월세를 놓는 임대업자로서 다주택자의 부담이 줄어든다면 세입자들의 부담도 자연스럽게 경감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이념적으로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1가구 다주택에 중과세하는 게 윤리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고금리 상황에서는 임대를 선호하게 돼 있다”며 “임대 물량은 결국 다주택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중과세를 하게 되면 임차인에게 그대로 조세 전가가 이뤄지고 주거비 부담을 올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에 부활하기로 한 ‘등록 임대사업제’에서 사업자는 각종 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전세 재계약시 임대료를 5%이상 올리지 못한다. 이는 임대시장 안정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내년 부활하기로 한 ‘매입 임대’(등록 임대사업제는 임대사업자가 집을 지어 임대를 놓는 ‘건설임대’와 기존 주택을 사서 임대를 놓는 매입 임대로 구분) 대상에 전용면적 59㎡이하 소형뿐 아니라 ‘85㎡ 이하’ 아파트를 포함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면적은 우리나라 아파트 중 60%를 차지하며 서민 주거비율이 40%에 이를 정도로 주택수요가 가장 많은 주택형이다.
임대사업용 주택을 15년 이상 장기임대할 경우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택을 공시가격 9억원 이하로 높여주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이렇게 되면 서울 등 수도권의 시세 12억~13억원 아파트도 임대사업용으로 등록할 수 있다. 다주택자가 수도권과 부산 등 대도시 고가 아파트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소장은 “자금여력이 있는 다주택자는 주택 선호도가 높은 유망지역에서 전용 85㎡ 이하 아파트를 산 후, 정부가 허용한 임대의무기간(10년 이상) 동안 각종 세금 혜택(취득세 및 양도세 중과, 종부세 합산 배제 등)을 보면서 임대사업을 하다가, 향후 자녀 등에게 ‘증여’계획을 세울 수 있는 등 선택지가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주택시장 경착륙 방지’와 ‘서민주거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으로 평가했다. 김흥목 국토부 주거복지정책관은“다주택자가 보유한 아파트를 등록임대 공급으로 유도해 임차인은 양질의 주택에서 장기간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고, 임대사업자는 감세 혜택을 받는 상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를 구원투수로 등판시킨 이번 대책에 대해 꽤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 상황에서 거래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무주택자 대신 자금 여력이 있는 다주택자들이 나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거래가 위축된 시장에 숨통을 틔워주길 기대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고금리와 경기침체 우려 등의 영향으로 최근의 하락 흐름이 단기간에 반등하긴 어렵지만, 급매물 소화가 빨라지면서 내년 상반기를 지나면서 하락세가 많이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국 책사컨설팅 부동산연구소장은 “대출규제 완화 등으로 현금 여력이 더 생긴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알짜지역 급매물이나 경매 물건들이 빠르게 소진되면 내년 상반기 주택시장은 바닥을 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다만, 수요가 늘어나기 어려운데 입주량이 몰리는 지역과 대기수요가 많은 서울 인기 지역과는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도 있다”며 “경기여건, 지역 상황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일한 기자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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