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잘 팔려도 직원 안 늘리는 기업들… 이유는 ‘리퀴드 소비’ 때문?

최성락 SR경제연구소장 2022. 12. 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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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소비 변화 못따라가는 노동 시장

현대인의 소비 패턴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소비 패턴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으로 리퀴드(liquid) 소비와 솔리드(solid) 소비라는 개념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플로라 바디와 지아나 에커트가 2017년 논문을 통해 제시한 개념이다.

솔리드 소비는 안정적인 소비를 의미한다. 지금 사용하는 것을 앞으로 미래에도 사용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급속한 변화는 아니며 예측 가능하다. 반면 리퀴드 소비는 물과 같이 유동적인 소비이다. 순간순간 변화하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힘들다. 올해 크게 히트해서 유행한 것이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소비자는 하나의 상품, 브랜드에 충성심을 보이지 않고 그때그때 맘에 드는 것을 소비한다. 한때 유행하고 바로 사라지는 상품들이 리퀴드 소비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공유경제도 리퀴드 소비의 특징이다. 자기가 소유하지 않고 빌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잠깐 마음에 드는 동안에만 소비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의 소비 패턴은 확실히 솔리드 소비에서 리퀴드 소비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한때 좋아했던 브랜드라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참지 않고 바로 다른 브랜드로 바꾸어버린다. 리퀴드 소비하에서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훨씬 늘어나고 다양한 상품을 소비하며 만족감이 늘어난다.

반짝 인기 상품의 대명사로 꼽히는 허니버터칩. 한때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으나, 제조사가 라인을 대거 증설한 이후 인기가 시들해졌다. /뉴스1

그런데 이건 생산자 측에서는 대응하기 곤란하다. 출시한 제품이 히트를 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하자. 솔리드 소비일 때는 지금 히트한 상품이 앞으로 몇 년은 간다. 지금 당장 직원을 더 채용하고 공장 설비를 더 늘려도 된다. 하지만 리퀴드 소비일 때는 지금 아무리 대히트를 해도 몇 달 뒤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만약 직원을 더 뽑고 설비를 늘렸다가 내년에 소비가 사라지면 그야말로 망한다. 아예 히트 상품이 없었을 때보다 못한 지경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생산자는 당장 일손이 부족하다고 사람을 더 뽑거나 투자를 더 하면 안 된다. 최대한 현재 인원과 설비로 버텨야 한다.

그나마 미국처럼 수요가 낮아지면 바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수요에 따라 직원을 탄력적으로 늘리거나 줄여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정규직 고용 안정이 보장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수요가 낮아진다고 바로 해고할 수 없다. 정규직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비정규직 인력을 늘이거나 줄여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사회는 기업을 향해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생산자 입장에서는 수요가 안정적이지 않은데 고용만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리퀴드 소비가 생산자 입장에서는 고용을 늘릴 수 없는 원천적 한계가 되는 것이다. 리퀴드 소비가 득세할수록 물건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외주를 주고, 자체 고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기업의 노력은 가속화될 것이다. 소비 패턴 변화를 노동 시장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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