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 영웅은, 팩트다"…윤제균 감독, 안중근에 대한 진심
[Dispatch=정태윤기자] 윤제균 감독은, 인터뷰 내내 '팩트'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우덕순이 담배 장사를 한 것도 팩트, 조도선이 세탁소를 운영한 것도 팩트, 게다가 명사수였다는 것도 팩트‥."
그리고 그가 말했다.
"안중근 의사는 실제로 전투를 한 군인이었습니다. 국내 진공 작전을 2번이나 성공시켰죠.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윤 감독은 그렇게, 철저히 고증에 기반해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그는 "영화적 장치를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그렸다"고 설명했다.
영화 '영웅'은 국내 최초의 라이브 뮤지컬 영화다. '단지동맹', '누가 죄인인가',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등 대표적인 넘버들이 (광활한)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윤 감독은 시각과 청각의 앙상블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 영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느끼고, 더 관심 갖길 바란다"며 인터뷰의 말문을 열었다.
◆ '영웅'을 택했다
2009년 영화 '해운대'로 1,145만 명의 관객을 불렀다. 2014년 영화 '국제시장'으로 1,425만 명을 모았다. 국내 최초 '쌍천만'을 기록한 그가 8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윤제균 감독은 특유의 웃음 코드를 포기(?), 오롯이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1909년 제국주의의 심장에 총탄을 날린 그 영웅, 아니 그 인간의 마지막 1년을 스크린에 담았다.
"2012년에 뮤지컬 '영웅'을 봤습니다. 공연이 끝났지만 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어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냥... 너무 마음이 아렸어요. 분하고, 안타깝고, 아프고, 속상했습니다."
특히, 조마리아 여사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의 울림을 잊을 수 없었다. 목숨을 구걸하지 마라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가 보낸 편지 한 글자 한 글자가 머리를 맴돌았다.
윤 감독은 이를 클라이막스에 옮겼다. '누가 죄인인가'에서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 '장부가'까지. 영화는 영웅 안중근과 인간 안중근의 삶, 그리고 죽음을 폭풍처럼 휘감는다.
"조마리아 여사는 실제로 뤼순 형무소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아들 마음이 약해질까봐, 흔들릴까봐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서 더 아픕니다."
◆ '영웅'은, 팩트다
윤제균 감독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팩트다.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만큼, 대충하고 싶지 않았다. 관련된 서적은 모조리 찾아봤다. 역사학과 교수들을 찾아 조언도 구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까다로워졌다. 한 장면 한 장면에 "팩트는 무엇인가"를 외치게 됐다. 영화적 상상력을 보탠 것도 있지만, 역사적 현장은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일례로, <누가 죄인인가> 넘버. 윤 감독은 "이 곡을 부를 때 마차가 스치듯 지나간다. 실제 남아 있는 사진을 보고 똑같이 구현해서 만들었다"고 전했다.
"우덕순(조재윤 분)이 담배 장사를 하잖아요? 유동하(이현우 분)는 18~19살 청년이었고요. 조도선(배정남 분)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명사수…. 이 모든 것은 팩트입니다."
가장 자신있는 장면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 그는 "많은 분들이 이토가 차에서 내리고 바로 저격당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군들이 도열해 있었고, 작은 열병식처럼 사열했습니다. 그리고 이토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안중근 의사가 총을 쏘죠. 철저히 고증에 의해 촬영한 장면입니다."
덧붙여, 역사 속 이야기도 전했다.
"러시아에선 그날 검문을 철두철미하게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토가 거절했죠. 자신이 하얼빈에 도착한 모습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어했거든요. 이 때문에 거사에 성공할 수 있었고요."
◆ 뮤지컬에는 없는 것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파다보니, 점점 더 욕심이 생겼다. 이 영웅을 더 자세히 알리고 싶었다. "하얼빈 의거는 알지만, 안중근 의사의 진짜 직업을 아는 사람도 많더라"며 아쉬워했다.
"안중근은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이었습니다. 일제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거죠. 국내 진공 작전을 2번이나 성공했다는 기록을 봤어요.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그래서 등장한 장면. 초반부 안중근의 의병전쟁이다. 1908년 7월, 안중근은 200명 규모 부대를 거느리고 연해주에서 두만강을 건넌다. 일본군과 전쟁에서 승리해 포로들을 붙잡는다.
당시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의거, 포로를 석방해줬다. 하지만 포로들이 안중근 부대의 정보를 밀고, 결국 부대가 전멸하는 참사를 낳았다. 안중근은 동지들을 잃고 처절히 후회한다.
"오프닝에 회령 영산 전투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안중근 의사가 어떤 마음으로 왼손 약지를 끊어 맹세하고, 죽음으로 구국투쟁을 벌였는지 절실히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뮤지컬에 없는, 또 다른 설정. 바로 설희(김고은 분)의 개연성이다. 설희는 가상 인물로, 독립군의 정보원이다. 국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정체를 숨긴 채 이토에 접근한다.
윤 감독은 "뮤지컬을 보면서, '설희는 왜 이토를 직접 처단하지 못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를 영화에선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설희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이토가 하얼빈에서 재무장관을 만날 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알아내는 설정이다. 서사가 부족한 부분은 각색을 더했다.
◆ '영웅'은 라이브다
윤 감독은 뮤지컬 '영웅'의 감동을 영화에서도 똑같이 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배우들의 독창을 생생한 라이브로 결정했다. 아니, 고집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투지와 의지, 그리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끓는 마음까지…. 숨소리조차 리얼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데 라이브를 결정한 순간, 모든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그냥 후시 녹음으로 할 걸...' 촬영 내내 몇 번을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까지 고난의 연속이었죠."
그도 그럴 게, 라이브는 대부분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배우들은 3~4분 분량의 곡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노래와 연기, 그 어느 것도 놓칠 수 없었기에 부르고, 또 불렀다.
"배우들이 정말 많이 고생했습니다. 모든 배우가 독립투사가 된 것 같았죠. 김고은은 노래를 부르다 탈진도 했고요. 정성화는 촬영 종료 후에 재촬영을 하느라 다시 10kg을 빼고 왔죠."
윤 감독은 "관객들이 100을 기대한다면, 우린 200을 보여주자 독려했다"면서 "안중근 영화라는 사명감 때문일까.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초인적인 힘을 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 '영웅'을 대하는 자세
윤제균 감독은, 일전에 아들과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잘 모르더라고요. 국영수는 매일 공부하면서, 한국사는 왜 소홀히 하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대학가는데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라고 답하더군요."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 역사의 가장 중요한 한 페이지다. 하지만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농담 반으로) '하얼빈 역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분'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영웅입니다. 그가 살았던 삶을... 감히 상상 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무엇을 위해 죽었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 감독은 소원을 덧붙였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아직도 (독립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게 제일 죄송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뤼순형무소는 사형수를 관 없이 매장했어요. 그런데 안중근 의사는 관에 넣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공동묘지에서 총 3개의 관이 발견됐는데, 그 중 하나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닐까요? 유해를 찾아 모실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우리가 영웅의 후손이니까요."
<사진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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