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One] 스위스, 내 삶은 나눔과 함께 천천히 스며들었다-上

신정숙 통신원 2022. 12. 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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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의 겨울. ⓒ Genève tourisme

(제네바=뉴스1) 신정숙 통신원 = 제네바는 스위스 내에서도 다양한 외국인들이 사는 도시 중 하나다. 도시 중심에 국제기구들이 많고 관광객도 끊이지 않는 곳이라 거리를 다니다 보면 다양한 외국어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 다양함이 때론 이민자들에겐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그만큼 복잡할 수도 있고 변수도 많다. 그럴 때 '타향살이'의 어려움과 힘듦, 그리고 외로움이 다가오는 것 같다. 고급스러운 명품 가게들과 호텔들이 호수 주변으로 늘어서 있는 도심의 삶도, 높은 산들에 둘러쌓인 산골 마을 속 삶도 그 외로움의 크기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같은 말을 하는, 같은 문화 속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어딘가 나와 같은 여행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찾아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한인회에서 주최한 명절 행사에도 참석했고, 종교 단체 모임도 가게 됐고, 그리고 스위스에 사는 한국인 아줌마들을 위해 마련된 인터넷 카페도 알게 됐다. 낯선 이들이 만나 서로의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됐다.

이 따듯한 공간을 만들어 낸, 제네바에서 20년을 살면서 아낌없이 나눠주는 삶을 살았던 OK쌤. 그 또한 이방인이지만 힘든 일이 있거나 함께 축하할 일이 있을 땐 먼저 손을 내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위로와 웃음, 배려와 사랑이 있는 그의 삶을 담은 책 <우리는 열한 살에 만났다>에서 몇 가지 주요 에피소드를 통해 그의 스위스 삶을 더 진솔하게 들어봤다.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 신정숙 통신원

"큰아이는 학교에서 영어로,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서 불어를 했다. 그리고 다 같이 집에 모이면 엄마의 진한 경상도 말에 장단을 맞춰야 했다."

공식 언어는 불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 이곳에서 20년을 넘게 살면서도 영어와 불어 못지않게 오리지널 부산말을 하며 화려한 제네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그.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둘째가 잔뜩 흥분해서 집에 돌아왔다. 유치원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가 신기하게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러냐고 맞짱을 쳐주면서 물었다. 무슨 말? 아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말을 가르치기로 했고 아이들과 함께 그도 한글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때부터 옥쌤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글학교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걸 스스로 받아들였을까?

"아이들이 한글학교를 처음엔 재미로 갔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용이 어려워지니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숙제하기 싫어하는 빈도가 점점 늘어서 갈등도 많았어요. 그만둘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그때마다 애들을 잘 구슬려서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한국 가서 가족들과 대화를 못 하면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이겠니? 라는 읍소도 살짝 먹히긴 해서 무사히 초등학교 과정은 마치게 됐요.

그러나 정작 본격적으로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딸이 K-Pop을 접하게 되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주변 친구들에게 가사를 번역해 주는 일을 하더라고요. 한글학교 다닐 때도 못 보던 국어사전이 딸의 책상에서 나오길래 한참을 웃었답니다. 지금도 슈퍼주니어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모도 못 한 일을 하셨어요. 덕분에 취미가 직업이 되어 한국에서 관련 업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청소년기 재외동포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청소년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같은 환경의 동포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그 기억이 좋았는지 대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1년 머물렀지요. 그 당시 외국인 유학생들이 자기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는 것에 살짝 자극받은 것도 있는지 1년 사이에 한국말이 많이 늘어서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족 단톡방에서 모두 한글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에겐 부모의 선택으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외국 생활입니다. 한글은 부모에겐 당연하지만, 아이들에겐 강요가 될 수 있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지만 고함부터 질렀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하는 건 모든 교포의 희망 사항이자 의무 또는 책임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국가 공식언어가 4개인 스위스에선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모국어, 즉 해당 지역 언어가 아닌 두 번째 언어를 배워야 한다. 결국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스위스 불어권 아이들은 불어, 독일어,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선 부모들과 한국어를 하고, 배우자가 외국인 경우엔 또 다른 언어를 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어 교육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스위스 초등학교 교과서. ⓒ 신정숙 통신원

2부에 계속.

sagadawa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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