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잡으면 지지율 오른다? 윤 정부 ‘노조회계 논란’ 뜯어봤다 [팩트 체크]

전종휘 2022. 12. 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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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노조 회계 불투명성 논란 3대 쟁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공직 부패와 기업 부패에 이어 노조 부패를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 지목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 힘, 일부 보수언론이 합심해 제기하는 노동조합 회계 불투명성 논란은 이른바 ‘노동개혁’ 국면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가려는 의제 설정이라는 게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일부 단위노조의 회계가 불투명한 사례로 거론될 뿐, 노조 전반의 회계 비리가 드러난 일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느닷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불거진 주요 쟁점을 뜯어본다.

민주노총이 거액 주무른다고?

일부 언론은 민주노총 본부와 16개 가맹 산별노조의 예산을 뭉뚱그려 민주노총이 엄청난 예산을 주무르는 듯 프레임을 짠다. 이는 단일 노조인 16개 산별노조와 이들 노조가 느슨한 형태로 가맹하는 민주노총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노조 회계는 각 산별노조와 총연맹이 따로 하는 구조다.

민주노총의 연간 예산은 200억원가량이다. 전액 조합원의 가맹비로 충당한다. 민주노총은 인건비와 유지비 등 명목으로 107억원, 지역본부 등에 보내는 교부금으로 47억원, 쟁의사업비로 10억원, 정책사업비로 2억6000만원을 지출한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민주노총은 회계 관련 회계감사 선임과 감사 기간 및 보고 등 규정에 따라 연 2회 집중 감사를 하고 모든 예·결산 자료는 대의원대회에 보고해 심의·의결한다”며 “조합원은 해당 노조와 대의원을 통해 언제든 회계자료를 열람하고 받는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마치 산별노조에 전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듯 바라보는 시각도 편견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에 가맹한 노조들이 2000년대 초반 잇달아 산별노조로 전환한 뒤 각 산별노조가 행위의 주체가 돼 별도로 움직이는 탓에 “총연맹은 허수아비냐”는 논란이 불거진 지 오래다. 다만 노동계 일부에선 정부가 촉발시킨 실체없는 논란과는 별개로 이 참에 규모가 큰 산별조직이나 총연맹은 회계사를 감사로 선임하는 등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선제 조처를 하는 게 장기적으로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조금 투명성은 국가와 지자체가 챙길 문제

노조 회계 투명성 논란의 핵심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노조에 지원하는 보조금이나 각종 노동교육 관련 위탁사업비 집행의 문제다. 하지만 이마저도 논란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민주노총 본부는 현재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 내는 보증금 30억여원을 고용노동부로부터 국고 지원받은 것을 빼고 별도의 보조금은 받지 않는다. 일부 산별노조와 지역본부가 노동부와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노총의 연간 예산은 올해 기준 138억원가량이다. 조합원이 내는 가맹비가 66억7000여만원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국고보조금 26억3000만원, 서울시와 공공기관에서 지원받는 47억여원이 재원이다. 한국노총 쪽은 “보조금 집행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산검증을 하고 있고 외부 회계법인 두 곳의 회계감사를 거쳐 정부에 상세한 내역을 보고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제기한 노조 회계 불투명성 논란에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노동부는 자료를 내어 “개별 지원사업의 관련 규정에 따라 철저한 결산 절차 등을 거쳐 집행의 적절성 등을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우리도 노조 회계 투명성 문제가 불거진 경위에 대해선 상세하게 파악 중”이라며 “노조 조합비 관련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우리가 파악해보고 법률에 맞지 않는 건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왜 조합비를 들여다보나?

보조금이나 위탁 사업 등을 빼고 노조의 나머지 일반회계는 모두 조합비로 충당한다. 해당 조합비가 제대로 쓰였는지는 외부인이 아닌 조합원들이 문제를 제기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는 조합비 사용 상세 내역의 노동청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을 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외부 재원이 투입되지 않은 노동조합의 회계와 관련해 국가 등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노조의 자주권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정부와 여당이 연일 실체조차 모호한 노조 회계 불투명성 문제를 거론하며 귀족노조, 깜깜이 회계로 몰아붙이는 데엔 저의가 있다고 의심한다. 내년부터 본격화 할 노동개편을 앞두고 노조의 기를 꺾고 가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조합비 사용내역에 대한 발언권은 조합원한테 있는 것으로, 정부가 여기에 개입하겠다는 건 노조 자치주의에 위반한다”며 “정부가 노조를 때려잡으면 지지율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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