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거꾸로 가는 국민의힘 '경선 룰'
"민심보다 후진적 계파정치에 몰두"
당권경쟁 매몰…'과이불개' 아쉬워
국민의힘이 내년 3월 초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원 투표 비율 100%로 당대표를 뽑기로 결정했다. 기존 '당원투표 70%, 여론조사 30%'에서 여론조사를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념과 철학 목표가 같은 당원들이 대표를 뽑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민 여론조사를 병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당이 민심과 동떨어질 것이란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사실상 친윤(친 윤석열)계 당 대표 선출을 위한 룰(rule) 개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최다 득표자의 득표율이 50%를 넘지 않으면 1·2위 득표자가 다시 맞붙는 이른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도 친윤계 주자가 난립하는 현 상황에서 사실상 후보 단일화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게임의 룰을 갑자기 바꾸면 그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당 대표 적합인물 1위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반 국민이 아닌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당심' 조사에서는 '친윤계' 당권 주자가 두각을 나타내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 대표 경선에 국민 참여 여론조사를 도입한 것은 2004년 3월 23일에 열린 한나라당 임시 전당대회였다. 대의원 투표(50%)와 함께 국민 여론조사(50%)도 포함시킨 것이다. 이처럼 민심 50% 반영이라는 파격적인 경선 룰을 도입한 건 총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역풍을 맞아 4·15 총선에서 참패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50%를 넘어섰다. 박근혜 의원은 새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기존 한나라당의 현판을 내리고 인근에 설치한 '천막 당사'에 기거하며 총선 '구원투수'의 역할을 다한 결과 121석을 얻었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룰 개정과 관련, 당원 투표 100%로 치러질 경우 '윤심' 당권주자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친윤계 의원 모임인 '국민공감'도 출범했다. 소속의원 115명 중 65명이 가입한 여당 내 최대 모임이다. '순수 공부모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내년 3월 전당대회에서 친윤계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보수 정당이 몰락했던 것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 18대 총선 '친박계 학살 공천',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19대 총선 '친이계 대거 컷오프', 20대 총선 '진박-비박 갈등'이었다는 시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른바 '친윤계'를 자처하며 대통령에게만 줄 서려고 하는 후진적 계파 정치는 민심과의 괴리만 커지게 할 뿐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집권한 더불어민주당도 강성 문파에 휘둘리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권력을 내주었다.
국민의힘은 정권이 교체된 지 7개월이 지나도록 집권당다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그동안 집안싸움에만 매달렸다. 이런 와중에 예산안과 법안 처리는 거대 야당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이 공식 비대위 만찬에 앞서 권성동·장제원·윤한홍·이철규 의원 등 이른바 '윤핵관 4인방'을 관저로 부른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힘 당내에서는 "당 지도부 위에 윤핵관이 있다"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내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여 환골탈태해야 할 중대한 기회다. 하지만 계파 경쟁에 매몰되면서 집권당의 본분마저 망각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올 한 해 한국 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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