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취직 보장’ 반도체학과 합격자 10명 중 7명 등록 포기…왜?

전문가 "의대 등 다른 학과 진학 위해 등록 포기"

21일 종로학원이 분석한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반도체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의 2023학년도 수시모집 1차 추가합격 현황. 종로학원 제공

 
대기업 취직이 보장되는 반도체학과 합격자 10명 중 7명은 의대 등 다른 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고려대·연세대·한양대 반도체학과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69.0%)이 등록을 포기했다. 해당 자리는 추가 합격자들로 채워졌다.

학교별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40명 모집에 29명(72.5%),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24명 모집에 17명(70.8%),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20명 모집에 12명(60%)이 추가 합격해 절반 이상이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 학교 자연계 학과의 평균 등록 포기 비율보다 높은 수준이다. 1차 추가 합격 기준 모집 정원 대비 추가 합격률은 자연계 평균 한양대 52.5%, 연세대 52.1%, 고려대 46.6%였다.

세 학과는 모두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다. 졸업 후 최소한의 채용절차만 통과하면 100% 계약기업으로의 취업이 보장된다. 연세대는 삼성전자와, 고려대·한양대는 SK하이닉스와 계약을 맺고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합격자 10명 중 7명이 등록을 포기한 이유는 "의대를 가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은다.

통상 이과 학생들은 공대·생명대와 의대를 중복 합격한 경우 의대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취업이 보장된 반도체 계약학과도 똑같이 의대에 밀렸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아직까지 상위권 고득점 학생들에게는 (반도체학과가) 여전히 의약학계 전문직에 밀리고 있는 것"이라며 "의대는 졸업하면 자격증이 나오는데 반도체학과는 그만큼 보장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취업이 어려우니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기하고 다른 데를 갈까' 예상했지만 학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라며 "반도체학과 합격자들이 빠져나가는 곳도 다른 곳보다는 의대"라고 밝혔다.

반도체학과 학생들의 의대 이탈을 막기 위해선 보다 더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 대표는 "향후 정부 반도체관련 구체적인 육성정책과 맞물려 대학과 기업들의 보다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연계책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의약계열 선호를 막기엔 당분간 역부족으로 보여진다"며 "특히 대기업과 연계되지 않은 학과, 지방권 소재 반도체 관련 학과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 학과는 정시모집을 앞두고 있다. 모집인원은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10명,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10명,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16명이다. 연세대와 한양대는 오는 29일 오전 10시, 고려대는 30일 오전 10시부터 원서를 접수한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정시에서도 추가합격을 노리고 반도체학과에 지원하려는 수험생들이 있을 수 있지만 요행을 바래선 안 된다"며 "무조건 합격만 노리기 급급하기 보다는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