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도 꺾이지 않았던 스피드 레이서 김종겸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접촉 사고에 꼴찌 출발하고도 16대 제쳐
3년 만에 열린 관중석, 에너지 얻어
한국 축구가 일으킨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열풍은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 한 달 전에 열린 국내 최고 모터스포츠 대회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에서도 불었다. 올해 최고 스피드 레이서가 나오는 최종 라운드에서 접촉 사고로 첫 바퀴부터 최후미로 처진 꼴찌가 무려 16대를 제치고 챔피언에 오르는 기적을 쓴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터스포츠 제왕 김종겸(31·아트라스BX 모터스포츠)이다. 김종겸은 슈퍼레이스 최상위 종목인 삼성화재 6000 클래스에서 역대 최다인 네 번째(2018·2019·2021·2022) 시즌 챔피언을 차지했다. 특히 올해는 마지막 8라운드에서 접촉 사고 불운을 딛고 이뤄낸 극적인 우승이라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됐다.
김종겸은 19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매년 챔피언을 향해 달리지만 올해는 상향 평준화돼 정말 경쟁이 치열했다”며 “레이싱 인생 통틀어 가장 드라마 같은 우승”이라고 돌아봤다. 20바퀴 동안 16대를 제쳐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질주를 펼친 것에 대해서는 “사고 났을 때 누구와 부딪쳤는지, 차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정신 없었다”며 “중요한 경기에서 사고가 발생해 흥분도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팀에서 보낸 무전을 듣고 이내 안정을 찾았다. 그는 "무전으로 ‘이제 시작이다, 아직 스무 바퀴 남았으니 차근차근 올라가보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줬다”며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렸더니 챔피언까지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에 느낀 거지만 ‘어떤 상황이 생겨도 꺾이지 말자’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서킷 위에서는 냉철한 승부사지만 운전대를 놓으면 모범생에 가깝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종겸은 틈틈이 기계 역학 공부를 한다. 차도 기계인 만큼 차량 정비의 기본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차량을 세팅할 때 지식을 접목할 수 있고 엔지니어와 소통도 가능하다. 김종겸은 “어렸을 때부터 차 타는 걸 좋아해 부모님이 공부를 안 하면 안 태워준다 해서 하게 됐다”며 웃었다.
또 모터스포츠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굉음은 그에게 큰 매력이 아니라는 반전도 있다. 김종겸은 “소리를 무서워한다”며 “열 살 때 카트로 레이싱을 시작했는데 소리가 큰 걸 무서워해서 잠잘 때 쓰는 귀마개를 끼고 탔다”고 털어놨다.
서킷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재미 못지않게 올해 팬들과 함께 현장에서 호흡한 것도 크게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코로나19 여파로 2019년 이후 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올해 관중석이 다시 열렸다. 슈퍼레이스 경기당 평균 관중은 올해 1만5,299명으로 코로나19 이전 활기를 되찾았다. 최근 7년 사이 2019년(2만2,000명) 다음으로 많다. 드라이버들도 서킷 위에서 팬들과 직접 만나는 그리드워크, 슈퍼 팬데이 등에 적극 참여하며 소통했다.
김종겸은 “팬들의 유무에 따라 드라이버 사기 부분에도 차이가 크다”면서 “드라이버와 팀을 위해 응원해주면 더욱 힘을 얻어 치열한 레이스를 보여주자는 마음가짐이 절로 생긴다”고 밝혔다. 인기가 절정에 오른 2019시즌에 대해서는 “용인 마지막 경기 그리드워크 때는 모든 차량이 도열해 팬들과 만나는데, 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아직 유럽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지만 우리 모터스포츠가 많이 대중화됐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올해도 2019년 못지않게 많은 팬들이 찾아와줬다”면서 “전남 영암이나 강원 인제는 거리가 먼데도 관중석을 꽉 채우고 응원도 보내줘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라이벌 구도도 새로 형성됐다. 김종겸은 최종 라운드에서 김재현(27·볼가스모터스포츠)에게 시즌 챔피언을 내줄 뻔했다. 김재현은 아쉽게 챔피언을 놓쳤지만 준우승에도 김종겸을 제치고 대한자동차경주협회 선정 ‘올해의 드라이버’ 영예를 안았다. 김종겸은 “어떤 종목이든 경쟁 구도가 있어야 팬들이 흥미를 느낀다”면서도 “다만 개인적으로는 라이벌이라고 생각을 안 한다”고 강조했다. 진짜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는 “지난해 챔피언도 나였고, 올해 챔피언도 나”라며 “올해의 나를 이겨야 내년 챔피언도 할 수 있다. 슈퍼레이스뿐만 아니라 해외 대회에도 많이 나가 한국 모터스포츠의 경쟁력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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