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개그’가 끌고 ‘미소 천사’가 밀고…
올 시즌 여자 프로배구 1위를 달리는 현대건설은 패배의 쓴맛을 모른다. 지난 10월 리그 개막 후 14연승(승점 38). 2위 흥국생명(승점 36·12승4패)보다 두 경기를 덜 치르고도 선두 자리를 지킨다. 안방인 수원에선 지난해 10월부터 22연승 행진 중이다. 둘 다 V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 지난 20일 찾은 경기 용인시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는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포근한 분위기가 바로 느껴졌다. 가족 같은 현대건설의 중심엔 강성형(52) 감독과 4년 차 미들블로커(센터) 이다현(21)이 있다.
◇'아재 개그’ 전도사 강성형
“제가 원래 불호령이나 기합 같은 건 성격상 거리가 멀어요. 시대 흐름과 안 맞기도 하고요. 여자팀 감독을 맡으면서 섬세하게 다가서는 수장이 되기로 결심했죠.”
강 감독은 원래 남자 배구에서 잔뼈가 굵었다.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20년 넘게 했다. 2019년 이탈리아 출신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을 때 선수들과 교량 역할을 하는 수석코치로 여자 배구와 인연을 맺었다.
“이때 여자 선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어요. 재미난 농담으로 시작하면서 긴장감을 풀려고 애를 씁니다.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을 앞뒀을 때 ‘우리도 가나초콜릿을 먹지 않는 것으로 축구 대표팀에 힘을 보태자’고 말했더니 썰렁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일상 속 개그가 필요하다고 믿어요. 웃어야 즐겁죠. 하하.”
강 감독은 선수들과 격의가 없는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한다. 경기 전 단체 미팅이 있는 날이면, 선수들은 ‘ㄷ’ 자(字) 형태로 마주 앉아 지난 경기를 복기하고 전술도 제안하는 난상 토론을 벌인다. 감독과 코치는 경청하며 선수들의 아이디어를 실전에서 시도해볼 수 있도록 가다듬는다. 강 감독은 “누구든 중간중간에 끼어들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강 감독은 연승 비결에 대해 그는 “다 같이 평등하게 땀 흘리며 원팀이라는 자부심을 만들어간다”며 “모든 선수가 주전처럼 준비하니 어떤 변수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주포 야스민 베다르트(26·미국)가 지난달 어깨 통증으로 물러났을 땐 베테랑 황연주(36)가, 최근 양효진(33)이 이탈했을 때 신예 나현수(23)가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며 연승을 이어갔다.
◇적들도 미소 짓는 ‘핵인싸’ 이다현
지난 1월 열린 2021-2022시즌 올스타전에서 강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몸을 흔들며 춤을 췄다. 당시 강 감독에게 동참을 ‘강요’한 겁 없는 선수가 바로 이다현이다. 경기 당일 이다현은 쉴 틈이 없다. 사교성이 뛰어나 상대팀 선수들도 이다현에게 몰려 안부를 물을 정도다. 쩌렁쩌렁한 기합소리와 함께 팀이 점수를 뽑을 때 나오는 싱글벙글한 표정은 팀의 활력소다. 그는 “경기가 있는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기분이 좋고 설렌다”고 말한다.
타향살이에 지칠 야스민의 외로움을 코트 안팎에서 달래줄 임무도 이다현이 맡는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필리핀에 거주해 영어에 능통하다. 이다현은 “타지 생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야스민이 우리 팀에 완벽하게 녹아들도록 돕고 있다”며 “나 역시 야스민과 영어로 대화하면 스트레스가 쫙 풀린다”고 했다.
이다현의 성장도 무섭다. 그는 큰 키(185㎝)와 빠른 발을 활용해 리그 속공 2위(성공률 53.25%), 이동 공격 2위(성공률 50.00%), 서브 공동 3위(세트당 0.222개)에 올라 있다. 그는 “이동 공격을 나만의 강점으로 만들고 싶다”며 “항상 코트에서 100%를 다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목표는 1위 팀이 아닌 ‘우승팀’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5라운드까지 압도적 선두(27승3패·승점 80)로 역대 단일 시즌 최다승·최다 승점 기록까지 갈아치웠으나 ‘우승팀’ 칭호를 얻지 못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시즌이 조기 종료돼 ‘1위 팀’으로만 남았다.
강 감독은 “연승 기록보다도 꾸준한 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이제 제대로 도약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다현은 “우리 팀은 5세트까지 가면 선수들 눈빛부터 달라진다. 확 터지는 팝콘처럼 터뜨려야 할 때를 직감한다”며 “밤새워 월드컵 결승전을 보고 나니 우승컵을 품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용인=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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