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그 많던 ‘노처녀’는 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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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가 주인공인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고작 서른 살이었다는 사실, ‘노처녀 라디오 DJ 미자의 일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라는 시놉시스를 가진 같은 시대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주인공 나이도 겨우 서른 한 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어느덧 그들과 동년배가 됐다.
그러고 보니 ‘노처녀’라는 단어를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 내가 급식을 먹던 시절까지는 드라마·영화·예능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에게 남성이 ‘아줌마’라며 시비를 거는 장면은 단골로 등장했고, 예능에서도 데뷔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여성 연예인에게 남성 출연자들이 공격의 의미로 사용하곤 했다. ‘노처녀’를 입에 올리는 남성의 나이가 해당 여성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나이 공격은 여성들에게만 유효하게 먹혔다.
TV에서 여성의 나이와 결혼 여부로 트집을 잡으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교복을 입고 모여 앉아 누가 가장 먼저 시집을 갈지 따위를 주제로 자주 떠들었다. 결혼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늦게 할 것 같은 친구 또는 아이를 빨리 낳을 것 같은 친구 등 아무 근거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토론을 이어 나갔다. 친구 중 누군가 결혼을 하지 않을 가능성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대세 예능이 ‘우리 결혼했어요’이던 시절이었으니까.
다행히도 세상이 바뀌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되던 17년 전의 서른 살과 지금 서른 살(1993년생)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스스로 돈을 벌어 파리의 ‘르 코르동 블루’로 유학을 다녀오고 유명 레스토랑의 스카우트까지 받는 능력 있는 파티시에임에도 나이 탓에 노처녀 딱지를 달고 산 김삼순과 이제 겨우 사회 초년생 딱지를 붙였을 2022년의 삼순이들은 너무도 다르다.
노처녀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노처녀의 사전적 의미는 ‘혼인할 시기를 넘긴 나이 많은 여자’로 아가씨·아줌마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결혼의 상태가 기준이 된다. 결혼 외에 다양한 라이프 사이클이 생겨난 지금의 세대에게는 조금 모호한 호칭이 되었다. 그러니까 전국의 ‘결혼 안 해’를 선언한 딸들에게는 전혀 성립될 수 없는 호칭이다.
지금의 30대는 (그리고 미래 세대는) 결혼에 사활을 걸지 않는다. 내 주변의 삼순이, 미자는 어떻게 살고 있나. 일단 나는 주말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놓고 신문사에 기고할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홀로 제주도로 휴가 간 고향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회사에 다니면서 사업을 시작해 투잡, 스리잡 뛰는 친구가 있다. 반면 일을 놓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올해 임용고시를 본 친구가 있고, 이직을 위해 매번 이력서를 고쳐 쓰는 친구도 있다. 더 이상 결혼만이 여성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친구들이 결혼을 ‘언제’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질문이 바뀌었다. ‘언제 결혼해?’가 아닌 ‘결혼할 거야?’가 되었다. 결혼을 인생에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아닌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결혼 여부로 나뉘던 세상에 살던 우리는 이제 다른 삶의 방식들이 있다는 걸 안다.
10년 전에는 ‘시집가는 모습 보고 싶은 노처녀 스타’에 배우 김혜수가 뽑히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김혜수에게 누가 감히 “시집 안 가느냐”고 할 수 있을까. ‘작품을 더 많이 찍었으면 좋을 것 같은 스타’ 같은 설문이라면 모를까 김혜수의 커리어에 결혼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이제 여성의 삶에 결혼은 당연하지 않다. 자연스레 결혼을 전제로 한 호칭들도 사라져 간다. 바람직한 변화다. 예전에도 여성에게는 그 호칭들이 반갑게 여겨진 적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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