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나의 첫 책
첫 책의 작가 노트에다, 언젠가 벽에 벽시계를 걸려고 애쓰던 날에 관해 썼다. 그리고 그 글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생각보다 더 잘되어 책이라는 물건을 짓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써야겠노라 생각했었다고. 그렇듯 내게 책이란 생각보다 더 잘되어야, 사실 그냥 잘되는 게 아니라 아주아주 잘되어야 만들어낼 수 있는 무엇이었는데 실제로 그게 만들어진 지 벌써 일 년 가까이가 지났다. 세상에나!
그렇게 쓰여진 첫 책 ‘브로콜리 펀치’에는 단편소설 여덟편이 실려 있다. 가장 처음 쓰여진 ‘빨간 열매’가 이십대 초반에 쓰여진 것이고,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이구아나와 나’는 삼십대 초반에 쓰여진 것이니 두 작품 사이에는 어림잡아 십년에 가까운 세월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책을 엮으며 나는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띄엄띄엄 쓰여진 이 작품들을 모아 보니, 모든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결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이야기.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이야기만을 해온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걸 깨닫고 난 뒤에야 나는 다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첫 책을 낸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그 뒤의 일들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이 책이 무사히 나오기만을, 그리고 이왕이면 잘되어서 많은 독자를 만나기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자, 그제서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었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할 거야?’라고. 거기에 즉시 내놓은 대답은 아직은 이것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고 싶다, 였다. 그래, 나는 이 다음에도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고 그 이야기들이 모이면 또 하나의 책이 되겠구나. 그러니까 언젠가 이런 것을 또 만들 수 있겠구나. 그것을 알게 된 순간 복잡하게 꼬여 있던 마음의 실타래가 고요하게 한 가닥으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그 두 번째 책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로 꽉꽉 찬 책을. 그리고 이것들을 하나로 엮고 나면 또다시 내게 물을 것이다.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할래?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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