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6750명 이주노동자 죽음과 지구촌 향연
‘인권 착취 전당’ 오명도…韓 ‘외인 고용제’ 개선을
김인선 부산대 교수·여성연구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아랍에서 열리는 첫 월드컵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거둔 16강의 기적, 92년 만에 최초로 경기 주심을 맡은 여성 심판, 상대적으로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이변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역대 가장 정치화된 월드컵, 역사상 가장 논란 많은 월드컵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2010년 대회 유치를 위한 뇌물 의혹부터 성소수자 탄압과 이주노동자 처우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 카타르의 반인권 행보에 쏟아진 비난에는 아랍에 대한 서구의 편견이 짙게 드리워 있다. 이주노동자 착취와 인권 문제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카타르 월드컵은 가장 비싼 대회로 기록될 듯하다. 지난 10년간 카타르는 사막 한가운데 최첨단 축구장 7곳, 공항 1곳, 호텔 107개를 건설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974개의 컨테이너를 레고처럼 쌓아 올린 스타디움은 11월에도 섭씨 30도까지 오르는 기온을 고려해 거대한 냉방 시스템과 공기정화 시스템을 완비한 최첨단 시설을 선보였다. 대회 개최 총비용이 2000억 달러(약 267조 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황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웅장한 월드컵 경기장은 이주노동자의 주검 위에 세워진 불명예 전당이다. 월드컵 참가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대회를 여름에서 겨울로 옮긴 이례적인 결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카타르는 1년 중 5개월 동안은 평균 100F(37.7C) 이상의 기온에 달한다. 지난 10년 동안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37만 명이 건설현장에서 밤낮없이 근무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워치는 “이주노동자들이 2022년 월드컵의 성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며 “무수한 이주노동자들의 개인적인 희생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임금 착취, 상해와 질병,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수천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대가 위에 월드컵이 성사되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2021년 2월 ‘가디언’은 월드컵 인프라 건설현장에서 약 675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카타르 당국에 따르면 사망 원인의 69%가 자연사였다. 석연찮은 발표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는 카타르가 “적절한 조사를 수행하지 않고 ‘자연사’나 ‘심장마비’로 사망 진단서를 발급”한다며 이는 “유족이 보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려는 이유라고 강력 비판했다. 전문가 의견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20~50대인데, 이 나이대 노동자들은 심정지 등으로 인한 자연사가 많지 않다. 한낮에 섭씨 50도를 넘는 작업 현장에서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10시간 이상 일하다 사망한 경우, 자연사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주노동자의 처우는 참담하다. 월급은 275달러(35만 원)인데, 그나마 국제사회의 항의로 지난 10년간 월 200달러였던 임금이 2021년 인상된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카타르 월드컵의 꿈을 완성시키고자 노동력을 제공한 이주 여성이 직면한 현실 또한 끔찍하다. 2022년 6월까지 거의 30만 명의 이주 여성들이 카타르에서 일하고 있다. FIFA가 승인한 100개 호텔에서 근무하는 여성의 경우 언어 및 신체적 학대, 성희롱과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인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에 해고가 두려워 폭행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한다. 손님의 괴롭힘을 상부에 보고해도 합당한 조치 대신 오히려 직원이 교체된다. 손님의 편의가 우선이다. 게다가 카타르 형법은 혼외 성관계는 어떤 경우에든 범죄로 규정하는 탓에 경찰이 성폭력 피해 신고자보다 합의한 관계라고 주장하는 남성 편을 들어 성폭력 피해자가 기소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의 근원으로 ‘카팔라(Kafala)’ 제도를 지적한다. 영어로 ‘후원(sponsorship)’을 의미하는 카팔라 제도는 아랍 국가들에서 수십 년간 이주노동자 고용 정책으로 이용되어 왔다. 실제로는 현대판 노예제라 불릴 정도로 열악한 노동 예속의 카팔라 제도 아래 카타르에서만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가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아랍의 카팔라 제도는 한국의 고용허가제와 참으로 닮아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한국의 사업장에 ‘젊은’ 이주노동자를 들여와 빈자리를 채우는 단기 순환 노동 이주 정책이다. 현재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는 총 22만 명에 달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에 이들이 겪는 생사여탈의 치명적 상황과 권리 침해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는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쓰다가 폐기처분할 수 있는 ‘일회용품 인간’인 셈이다. 이주노동자의 주검 위에 펼쳐진 카타르 월드컵의 향연을 우리가 마냥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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