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암 치료 이야기
우리 주변에 암으로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후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암이다. 매년 발생하는 암 환자는 25만 명을 넘어섰고, 고령화와 더불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암은 생체 내에 생긴 비정상적인 조직의 덩어리로서 자신의 생체와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과잉 증식하며, 생체를 되레 파괴하면서 자라고 원래의 장소에서 다른 장기나 부위로 전이를 일으켜 끝내 생체가 멸망하기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암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원전 2500년 이집트 기록에도 나올 만큼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암이지만, 180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치료법이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었다.
암 치료는 수술을 통한 종양 제거에서 비롯됐다. 19세기 중반 마취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외과수술을 통한 종양 제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뿐더러 재발도 막지 못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독성물질로 암세포를 죽이는 화학요법이 개발됐으나, 이 치료 역시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파괴하는 바람에 완치는 어려웠다.
미국은 1969년 역사적인 인류의 달 착륙을 성공시켰다. 이 여세를 몰아 닉슨 대통령은 1971년 연두 교서에서 ‘불치병’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해 12월 미국은 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의 골자는 국립보건연구원 산하에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NCI)를 두고, 정부 학계 산업계를 총괄해 국가 암 관리 계획을 수립·시행하게 했다. NCI 소장에게는 직접 대통령 예산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암 정복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미국은 1976년 200주년 독립기념일에 맞춰 암 정복을 축하하려는 성대한 계획까지 세웠으나,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기술로도 끝내 암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지도 못했고, 치료에도 미미한 진전만 이뤄냈을 뿐이었다.
이후에도 이런 피나는 노력이 계속됐고, 그 결과 1992~1998년 미국에서 암 발생률과 사망률을 조사해 보니 최고조에 달했던 1992년을 기점으로 암 발생률이 연평균 1.2%로 감소했고, 사망률도 연 1.1%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매우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한 해 40억 달러(약 5조 원)씩 20년간 암 퇴치에 쏟은 소득치고는 초라해 보이지만, 연 1.2%의 신환 발생감소율에 온 미국사회가 감격해하는 것을 보면 암 퇴치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일본에서도 1962년 국립암센터가 설립되면서 국가 주도의 암 퇴치 사업이 본격화했다. 일본 정부는 암 관련 예산 5600억 엔을 편성했고, 문부성 후생성 과학기술청이 공동 참여하는 암 극복 10개년 전략을 수립해 매년 100억 엔의 예산을 투입했다. 1960년대 일본의 조기 위암의 진단율이 20% 정도에 불과했으나, 국가 주도 암 검진사업이 시행된 후 2000년대에 들어와 60%를 웃돌았다. 이 당시 우리나라 조기 위암 진단율은 약 30%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 1970년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 실정이었고, 암 퇴치사업은 꿈도 꾸기 힘들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련 협회나 학회를 중심으로 암 퇴치에 대한 연구가 시도됐지만 정부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암 예방 식생활 수칙을 발표하는 등 암 예방과 조기 진단에 관한 홍보가 본격화했다. 2001년에 국립암센터가 설립됐고, 지역마다 권역별 암센터가 들어섰다. 그 결과 지금은 5대 암 검진뿐만 아니라 2019년부터 폐암의 검진도 국가 예산으로 실시하게 됐다. 현재 위암의 조기 진단율이 70%를 상회하는 등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조기 진단율과 치료성적을 올리고 있다.
의료계는 물론 국가 차원의 치열한 노력으로 ‘불치병’인 암 치료는 조기 진단과 수술법의 발전, 항암제 개발, 방사선 치료 도입 등으로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 특히 조기 검진을 통한 조기 진단과 적절한 수술을 통해 많은 환자가 완치에 이를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주사 한 방, 혹은 약을 며칠 복용하는 것으로 암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장수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과학이 이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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