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1인당 GDP 4만달러, 그 허망함에 대하여
올해 당신 가족의 소득은 얼마인가. 당신이 맞벌이든 외벌이든 1억8200만원을 벌어야 4인 가구 기준으로 평균에 해당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만5000달러. 원·달러 환율 1300원을 적용하면 4550만원이다. 당신 가족은 배우자와 자녀까지 4명이므로 이 금액에 ‘곱하기 4’를 해야 하고, 그렇게 산출된 금액이 1억8200만원이다. 그런데 4인 가구 소득이 1억8200만원이면 우리 사회에선 고소득층 아닌가. 통계청의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소득 10분위 현황을 보면 지난해 소득 상위 10% 4인 가구의 연 소득이 1억9042만원이다.
GDP의 허점이 여기에 있다. 국민소득으로 흔히 혼용되는 1인당 GDP에는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감춰져 있다. GDP는 한 국가의 영토 안에서 생산된 최종 생산물의 시장가치 합계다. 사회의 재화와 부가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통계를 하나 더 보자. 중위소득은 1등부터 꼴지까지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 등수의 소득이다.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은 6145만원이다. 4인 가구 소득의 평균값(1억8200만원)과 중간값(6145만원) 격차가 3배 가까이 나는 것은 경제성장의 결실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와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에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운용하기로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은 내년도 경제정책의 중점인 위기 극복 방안과 위기 이후 재도약 비전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27년에는 우리 국민의 1인당 GDP 4만달러에 이르러야겠다는 생각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한국 경제의 목표는 1인당 GDP 4만달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씨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7%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국민소득은 4만달러가 될 것이며, 세계 7위의 경제 부국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 성공 신화를 쓸 것이라고 했다. 2014년 1월 박근혜 정부도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GDP 4만달러) 비전을 제시했다.
1인당 GDP가 지난해 이미 3만5000달러에 이르렀으니 경기가 급반등하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4만달러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해도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 삶은 지금과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GDP의 자체 한계도 있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GDP가 요긴하지만 GDP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나 참사가 발생하면 역설적으로 GDP는 증가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 안 청소를 하며 저녁 식사를 차리는 등의 가사노동은 그 엄청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김치를 사 먹으면 GDP가 올라가지만 고향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김치를 택배로 받으면 GDP는 변화가 없거나 떨어진다. 마당에서 채소를 가꾸고 닭을 기르는 사람이 늘어도 GDP는 낮아지고, 금연하는 사람이 늘어도 GDP는 떨어진다. 자원고갈이나 환경오염, 기후위기 등도 GDP로는 알 수 없다. 삼림을 훼손해 목재를 생산하면 GDP에 포함되지만 벌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비용은 고려되지 않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 같은 학자는 국가 발전을 평가할 때 GDP가 아닌 국민의 자유 신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정치적 자유, 민권, 경제적 자유, 사회적 기회(의료·교육·복지), 투명성 보장, 안전 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GDP의 증가가 아니라 국민의 역량과 자유가 확대되고, 그로 인해 국민의 만족도와 행복이 커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GDP 증가를 무조건적으로 반기던 시대는 지났다. 윤석열 정부가 1인당 GDP 4만달러 달성을 이유로 국민에게 과로와 희생, 인내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수준의 경제 규모로도 5000만 국민이 집 걱정, 병원비 걱정, 먹거리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다. 사회의 평화는 어떤 시민도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사서 일방적으로 부릴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도, 자기 자신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을 만큼 가난하지도 않은 때 이뤄진다. 윤석열 정부도 경제성장을 매우 중시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키워진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임기 내에 중위소득을 얼마로 높이겠다든지, 소득분배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얼마로 낮추겠다는 등의 목표가 없으면 1인당 GDP 4만달러는 허망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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