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좋은 책인데 왜 알려지지 않죠
한 해를 정리하는 방식은 여럿인데 근래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되는 건 목록이다. 회사에서는 올해 나온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 일정과 매출 순서로 정리하고, 각자는 올해 읽은 책, 올해 본 영화, 올해 다녀온 여행지 등등을 인상 깊은 순서로 나열하며 베스트 10을 꼽기도 한다. 책과 출판의 영역에서는 ‘올해의 책’이 가장 흔한 사례이고 겹치는 책도 적지 않다. 이를 벗어나고자 다른 의미를 담거나 목록을 구성하는 이의 취향과 선택을 강조하는 시도도 이루어지는데, 올해 눈에 띄는 사례 두 가지를 나눠보려 한다.
첫째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진행하는 ‘2022 책아 미안해’ 기획인데, 모든 출판사 담당자의 마음이 아닐까 싶은 “이렇게 좋은 책인데 왜 유명하지 않죠?”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그렇다면 정성을 담은 손편지로 직접 그런 책을 알려보자는 제안이다. 실제로 마흔여섯 명의 편집자와 마케터가 올해 더 알리고 싶었으나 아쉬움이 남는 책을 다시금 알리는 편지를 썼는데, 공개된 내용을 읽다 보면 그야말로 ‘일의 기쁨과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안녕. 너는 내가 새롭게 합류한 회사에서 처음으로 마케팅을 담당한 책이고, 나는 너의 담당 마케터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너를 알리고 싶어서 편지까지 쓰게 됐지만, 나는 이 수고로움도 어쩐지 기꺼운 마음이야”라며 책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널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렇게 편지까지 쓰게 되니 그 찜찜함이 배가 되는구나. 출간 후에도 널 좀 재밌게 소개해 보려고 이런저런 애를 써 봤는데 녹록지 않았단다”라며 미안함과 아쉬움을 전하기도 하는데, 늘 서점, 언론,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고 전하는 시선과 손길이 다시 책으로 향하는 이야기라니, (물론 소개된 도서의 판매 달성률을 이벤트에 포함하고 있지만) 책을 매개로 함께 일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구현한 기획이라 하겠다.
두 번째 기획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읽고 싶은 책’인데 특히 작가가 한 권의 책을 꼽아 추천의 글을 붙인 대목이 흥미롭다. 참여하는 작가는 대체로 올해 신간을 내놓은 이들이니, 목록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작가의 새 책을 떠올리며 추천한 책과의 연결을 그려보게 되는데, 안중근의 삶을 그린 소설 <하얼빈>을 쓴 김훈 작가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신간 <인생의 역사>를 추천했다니, 제목만으로 그 이유가 짐작이 되면서도 실제 이유를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작용이 일어난다. 그런가 하면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는 김연수 작가가 9년 만에 펴낸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추천했는데, 김연수 작가는 (당연히 이를 알지 못했겠으나) 이를 이어받아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을 권하니, 물 흐르듯 연결되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신작과 작가가 추천하는 책을 연이어 읽고 나서 어떤 책을 떠올리게 될지, 독자로서 스스로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김연수 작가는 <선물>을 추천하며 이런 글을 붙였다. “새해의 세 가지 결심은 기분 좋을 결심, 타인에게 다정해질 결심, 길을 잃은 곳에서 뭔가 챙겨올 결심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읽는 책이 <선물>이다. 내가 가진 것을 주고 주고 또 주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게 예술가가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손쉬운 길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올해의 책 목록과 무관하게 연말연시에 동료와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는데, 올해의 ‘선물’ 책은 이 책으로 정하려 한다. 이어질 책의 목록을 기대하면서.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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