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길] 신발을 정리하며 맞이하는 새해

기자 2022. 12.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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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K선생의 옛 동료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가 지도자 과정에서 함께 수련했다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K선생이 동기 가운데 요가를 가장 열심히, 또 잘한 분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요가원 청소를 도맡았다는 겁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알고 보니 그가 요가원 청소까지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요가를 배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또 다른 수련이었지요. 시작하기는 싫지만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청소만 한 일도 드뭅니다. 청소는 바깥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일이지만 청소하는 이의 내면 또한 정갈하게 만듭니다. 그에게 청소 수련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K선생이 뒤늦게 인도 유학을 다녀올 만큼 요가에 깊이 빠져든 데에는 수련을 마칠 때마다 청소를 하며 마음까지 닦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공동체에는 비슷한 경험을 지닌 분이 또 있습니다.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와 잠자리에 들기 전, 명상을 생활화한 분입니다. 그가 명상을 시작한 얼마 뒤, 귀가해 현관에 들어서며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어지럽게 널린 신발이었습니다. 순간, 산사에서 보았던 가지런히 정돈된 흰 고무신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신발을 정리했지요. 이후 그는 집을 들고날 때마다 현관의 신발을 정리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하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파장은 컸습니다.

우선 집안의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손님이 왔을 때 신발을 정리하면 고마워하며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내의 표정도 재미났습니다. 더 크게 변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작은 의식으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게 된 겁니다. 명상과 신발 정리가 선순환하며 힘을 더해준 것일까요? 이전에도 몇 차례 시도했으나 얼마 못 가 중단했던 명상도 이번엔 길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서서 기쁘게 해내는 집안일도 늘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건강한 가족 성원이자 갈수록 공부가 깊어지는 사람으로 바뀐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기만 하면 몸과 마음이 바뀌고 삶이 변화한다는 운동이나 공부는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삶을 변화시킨 이는 흔치 않습니다.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탓입니다. 처음 몇 차례는 호기심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그 뒤가 문제입니다. 재미없고 고통스럽습니다. 명상의 경우, 가만히 있을 땐 별생각이 없는데 집중하겠다고 정좌만 하면 온갖 잡념이 달려듭니다. 거기에다 다리는 왜 그리 저리고 아플까요? 다른 운동이나 공부도 비슷합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이때 병행하는 작은 의식은, 공부나 운동과 서로 주고받으며 어려움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현관의 신발이나 이부자리 정돈처럼 규칙적이면서 짧은 시간에 쉽게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이면 더 좋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하면 금상첨화입니다. 아, 이런 일을 이미 넘치게 하며 지쳐 있는 분이라면 다른 전략이 필요하겠지요. 자신에게 의미 있는 포상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의식 혹은 리추얼을 따로 만드는 겁니다. 간단하면서도 마음이 맑고 밝아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루틴이나 리추얼로 자신을 칭찬하고 응원하는 겁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고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구도자들이 수행 혹은 공부를 하는 자세와 어려움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수행이든 다른 무엇이든 치열하게,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누구나 이를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발, 이부자리 정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 간단한 것을 3개월, 6개월, 1년 지속하면 몸이 달라지고 삶이 변화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글쎄요, 최악의 경우에도 나로 인해 주변이 좀 더 밝아지진 않을까요.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이나 꾸준한 공부, 글쓰기, 금연 등 새해를 앞두고 계획하는 것도 많을 겁니다. 이 계획에, 매일 들고날 때 가족의 신발을 정리하는 정도의 아주 작은 결심 하나 덧붙이며 새해를 맞이하는 건 어떨지요?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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