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차이나' 알파고를 막아라···칼 뽑은 美[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중국 AI 반도체 기업 캄브리콘 제재 돌입한 美
AI 국산화 저지 나서.. 엔비디아 등에는 수출통제
스타트업으로 일군 중국 AI 신화··· 과연 흔들릴까

[서울경제]

지난 2016년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기억하시나요. 이 세기의 대결이 전 세계에서 인공지능(AI) 무한 경쟁 시대에 불을 붙였습니다. 대결이 벌어진 바로 그해, 중국에서 아주 주목할만한 회사가 하나 탄생했는데요. 바로 중국 과학원(CAS) 출신의 천재 형제가 설립한 ‘캄브리콘 테크놀로지(Cambricon Technology)'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만든 AI 반도체가 중국의 빅테크들에 공급되면서 중국 내에서 가장 가치있는 AI 스타트업으로 떠올랐는데요. 이른바 ‘중국 AI 국산화’의 첨병으로 불리던 캄브리콘에 대한 전방위 수출 통제를 미국 상무부가 최근 단행했습니다. 중국에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만든 첨단 AI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체적인 AI 반도체 개발도 늦추겠다는 의도인데요. 미국의 중국 견제 행보는 점점 거침 없어지고 있습니다.

고생대 초기 캄브리아기라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듯이 출현하는 지구 역사의 전환점이 된 현상을 말합니다.

중국의 AI 칩 회사 캄브리콘이 바로 이 캄브리아기에 따온 이름입니다. ‘인공지능의 대폭발’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중국 과학기술 연구의 정점인 CAS 연구원들이 창립한 회사인데요

실제로 이 회사가 창립 1년 만에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유니콘 기업이 됐구요. 자체 개발한 AI 칩을 화웨이나 알리바바의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 서버 등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AI 칩 분야에서 전 세계 1등, 또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엔비디아입니다. 그런데 이에 맞설 중국 기업은 캄브리콘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을 정도입니다. 이 기업은 실제로 엔비디아 보다도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급속히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정부와 중국 자본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 제조 2025’에서 아주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AI입니다. 2017년에 발표된 중국의 차세대 AI 개발 계획을 보면 중국 내에서 1,500억 달러 규모의 AI 내수 시장을 키워내 2030년에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AI 리더에 오른다는 목표가 설정돼 있습니다. 중국 천재 과학자들이 만든 AI 반도체 기업 캄브리콘이 그 첨병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중국의 전략이 점점 현실화하는 것에 큰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중국 AI 산업에 대한 견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단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총 36개 기업이 새로 이른바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데, 그 중에서 21개 기업이 AI 관련 기업들입니다. 이 21개 기업 가운데 캄브리콘이 당연히 포함돼 있구요. 캄브리콘과 함께 캄브리콘이 태어난 CAS 컴퓨터 기술연구소가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 AI 반도체 기술 확보를 연구 단계부터 틀어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겁니다.

미국 정부는 특히 AI칩 관련 21개 기업에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는데요. 이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을 사용했다면 사실상 수출을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이 화웨이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사용했던 방식으로 수출 통제 조치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조치로 꼽힙니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말에 미국 기업들의 첨단 AI 반도체에 대한 대중 수출을 금지했는데요. AI용 반도체의 양대산맥이죠 엔비디아와 AMD가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길이 막히는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의 경우에 AI용 그래픽처리 반도체인 A100과 출시 예정인 신형 모델 H 100에 대한 대중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이 반도체 없이는 컴퓨터가 대량의 데이터를 입력받아 이를 처리하고 이미지를 인식하거나 음성을 이해하는 AI의 핵심기능이죠, ‘머신 러닝’을 하기가 불가능해집니다..

이후에 엔비디아는 A100을 저사양 버전인 A800으로 만들어서 중국에 공급한다고 발표하기는 했는데요. 글로벌 반도체 회사가 미국 정부가 정한 사양 이하로만 중국에 AI 반도체를 공급해야 하는 ‘반도체 보호주의’ 시대가 시작된 셈입니다.

그럼 미국의 이같은 전방위 제재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최근 수년 내 상황을 보면 통신 장비를 만드는 화웨이나 반도체를 만드는 SMIC 같은 기업들이 미국의 고강도 제재 이후 상당한 고초를 겪고 실제 매출에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AI 만큼은 중국의 저변을 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는데요. 이유는 중국의 AI는 이미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주도하고 있고, 중국 내수 시장이 워낙에 큰 데다. 중국 대학과 연구소들의 기술력이 미국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투자 업계에서는 중국 AI가 미국의 제재를 버텨낼 것인가 판별할 척도로 중국 AI 기업 하나를 주시합니다. 지난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음에도, 홍콩 증시에 상장한 ‘센스타임’이라는 중국 최고의 AI 기업입니다. 안면 인식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기술을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에 사용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여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 혹자는 달을 향한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이나 핵무기 경쟁보다도 AI 경쟁이 더 치열하고 끈질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