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66] 일곱 생선 만찬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나폴리나 시칠리아 등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많은 남부 지방 사람들이 먹고살 궁리를 하다가 미국이민을 택했다. 이전에 아일랜드에서 감자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영어를 몰랐던 이탈리아인들은 배에 승선하면서 모자에 ‘목적지 뉴욕(To NY)’의 뜻으로 영어 알파벳을 적었고, 후에 뉴욕의 많은 이탈리아 이민자의 영어 이름인 ‘토니(TONY)’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민 초기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하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크리스마스 명절이면 바다가 인접했던 자신들의 고향에서 먹던 다양한 생선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곱 생선 만찬(Seven Fish Diner)’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불확실하지만 1983년 필라델피아의 일간지에 이 표현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 로마가톨릭에서 명절에는 도축을 금하던 이유로 대신 생선을 먹었던 전통과도 연관이 있다. ‘일곱’을 선택한 것은 성경에 나오는 숫자면서 또 로마의 일곱 언덕도 상징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준비를 위해서 미국의 이탈리아인들은 부지런히 어물전을 다닌다.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의 이탈리아 레스토랑들도 일곱 생선 메뉴를 짜느라 분주하다.(물론 남부를 무시하는 북부 이탈리아 식당들은 제외다) 가정마다, 레스토랑마다 메뉴는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대구, 문어, 굴, 조개, 새우, 오징어, 패주, 열빙어, 장어 등의 생선과 해산물 요리가 다양하게 준비된다. 2018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일곱 생선 만찬’이라는 표현은 이탈리아 본토에는 없다. 그렇지만 미국에 사는 남부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중요한 전통이다. 몇 해 전 나의 델리에 햄과 살라미 등을 공급하던 이탈리아 형제에게 “크리스마스이브에 ‘일곱 생선 저녁’을 먹느냐?”고 물어봤다. “물론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곱가지가 아니라 열가지도 훨씬 넘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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