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없는 사업장 노동시간 늘 것…정부, 근로자대표제부터 정비를”
사용자, 대표 일방 지명 우려
직접·비밀 투표제 마련해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 개편의 핵심은 초과근무 시간 관리를 ‘주 단위’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바꾸는 것이다. 지난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내놓은 정부권고안은 ‘일주일 초과근무는 12시간으로 제한’이란 족쇄를 허물고 상황에 따라 주 69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했다.
연구회는 ‘노동자들의 선택권’을 강조한다. 바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한가할 때는 지금보다 더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초과근무 시간 관리 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바꾸려면 사용자와 근로자대표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로자대표의 대상, 선출방법 등은 권고안에 나오지 않는다. 우선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하게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근로자대표제도라도 명확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대표는 정리해고에서부터 근로시간 변경 등 여러 영역에서 노동자를 대표해 회사와 협의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근로자대표의 대상과 선출방법, 지위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선 사용자가 임의로 근로자대표를 선정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30인 이하 사업장은 노조가 미약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7년 8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30인 이상 기업 586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7.2%(335개소)만 노사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중 47.5%(159개소)가 근로자의 직접선거를 통해 근로자대표를 선출했고, 노조(과반수 노조)가 근로자대표를 지명하는 경우는 11.9%였다. 회사의 지명, 추천으로 근로자대표를 선출한다는 응답도 13.4%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근로자대표 선출에서 회사의 지배·개입 정도가 작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민주노총은 2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를 열고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은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반드시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방식에 따라 선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개정 논의를 하려면 근로자대표제 문제를 정리하고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든, 개정 논의를 해야 한다”며 “근로자대표가 없으면 사용자들이 일방적으로 대표를 지명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안대로 된다면 근로시간은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은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근로시간 양극화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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