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내려도 기름값 그대로더니”…정부, 판매단가 공개 확대 요구

송민근 기자(stargazer@mk.co.kr) 2022. 12. 2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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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정부가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공급단가와 수량 공개를 지역단위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 전국 평균 단가를 공개하는 마당에 지역별 가격과 판매량까지 공개하라는 것은 과도한 영업비밀 침해라며 정유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21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6일 자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 시행령 개정안의 심사를 마치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9월 산업부는 정유사의 지역별 공급 단가를 주·월단위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석대법 시행령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이후 의견수렴을 거쳐 산업부 자체 심의를 밟은 것이다. 이후 총리실 규개위를 통과하면 시행령이 적용된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 대해 정유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시장주의를 지향한다는 정부가 정작 시장을 억압하고 저해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유통되는 상품 가운데 이처럼 자세한 가격을 정부에 보고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한 품목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설명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정유사의 지역별 납품 단가를 영업비밀로 보호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영업비밀을 강제로 공개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판매가격이 공개되면 정유사는 대리점이나 주유소별로 합리적인 가격차별화를 할 수 없어 영업활동이 위축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부가 가격공개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그동안 고공행진을 이어온 유가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유류세를 인하해왔는데, 유류세 인하분을 정유사나 주유소 대리점이 중간에 마진으로 남겼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각 정유사가 제품을 출고한 뒤 소비자에게 실제 도달하기까지는 최대 2주가량 시간이 걸린다”며 “업계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과도한 규제 도입”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사가 탱크로리에 휘발유·경유 제품을 담아 출고하면 이는 중간 저장소에 보관된다. 이 곳에서 지역 주유소로 다시 한 번 주문에 맞춰 기름을 배달하는데, 각 주유소는 이미 판매할 재고를 어느 정도 쌓아두고 있기 때문에 유류세를 인하해도 그 폭이 즉시 소매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각 정유사는 날짜마다 출고가가 얼마인지 매출로 기록해 국세청에 자료를 제출한다”며 “이 자료만 봐도 정유사가 유류세 인하를 반영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1년 연구에서 “정부 정책에 의해 가격 공개가 강화되면 정유사가 경쟁사의 가격 설정 패턴을 분석해 가격을 올리거나 올린 가격에 맞추는 동조화를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미 동일한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이 한 번 추진됐다 무산된 적도 있다. 산업부는 2011년 9월에도 이번 시행령 개정안과 유사한 가격공개 확대를 추진했다가 총리실 규개위 심사로 무산된 바 있다. 과도한 정보 공개로 인한 영업비밀 침해가 이유였다.

정유업계에서는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걸면 걸리는’ 담합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나섰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각사의 지역별 공급량과 판매단가가 공개되는 만큼 경쟁사의 유통정보를 강제로 알게 된다. 2020년 말 공정거래법이 개정된 이후 직접 모여 담합을 벌인 정황이 없어도 간접적인 정보 공유로도 담합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다.

산업부는 석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역별 공급단가를 공개해야 유류세 인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안이 큰 틀에서 정유사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개별 주유소 대리점과 정유사 간 협상력에 차이가 있는 만큼 가격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담합 처벌 가능성에 관해서도 “과한 우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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