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 안정성 높이려면…‘K소부장’을 키워라[기로에 선 K반도체]
포토레지스트 국산화 동진쎄미켐
국내 자립도 30% 불과…갈 길 멀어
‘샤프(기계식 연필), 포클레인(굴삭기), 바바리코트(트렌치코트), 호치키스(스테이플러)…’. 대표적인 제조사의 브랜드 이름이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는 경우가 있다. 반도체의 불량을 검사할 때 사용하는 소모품인 테스트핀도 업계에서는 일명 ‘리노핀’으로 불린다. 시장 점유율 1위(약 70%)인 리노공업이 만든 테스트핀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을 만드는 삼성전자나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은 800~1000개의 리노핀으로 구성된 IC 소켓에 AP를 장착한 뒤 테스트 장비를 이용해 전기 신호가 잘 통하는지 확인한다.
리노공업이 생산하는 테스트핀과 소켓은 일본 기업 제품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수명이 훨씬 길다. 특히 높은 품질의 제품을 빠르게 생산해 납품하면서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반도체가 소형화하면서 테스트핀도 작아졌는데 리노공업은 현재 머리카락 굵기인 80~12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75㎛ 크기의 테스트핀을 제조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는 동진쎄미켐이 꼽힌다. 반도체는 감광액을 바른 웨이퍼 위에 마스크(반도체 회로가 그려진 유리판)를 대고 심자외선(DUV)이나 극자외선(EUV) 같은 강한 빛을 쬐는 방식으로 회로를 그린다. 사진을 찍어 현상하는 것과 원리가 같아 포토공정이라 부른다. 동진쎄미켐은 포토공정에서 사용되는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소재 업체다. 특히 일본 정부가 2019년 7월 EUV용 포토레지스트 등의 한국 수출을 통제하자 자체 개발에 들어간 동진쎄미켐은 지난해 12월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반도체 강국’이라 자평하는 한국에서 리노공업이나 동진쎄미켐 같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의 성공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 자립도는 30% 수준으로, 여전히 해외 부품이나 장비, 소재 등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뜻밖으로 중요한 소재가 물이다. 무기질, 박테리아 등 불순물과 이온을 제거한 ‘초순수’다. 웨이퍼 세척, 연마, 절단 등에 쓰이는 필수재다. 그러나 초순수 관련 세계 특허는 절반 넘게 일본이 갖고 있다. 생산시설 설계에서는 노무라 등 일본 업체가 한국 시장 100%를 장악했다. 최근에야 정부는 초순수 기술 자립화에 나서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국내 소부장 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반도체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세대 공정·소재·부품의 표준을 주도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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