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통령의 신년회견
역대 대통령은 언론 접촉을 썩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다가 설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때론 불편한 질문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토론을 불사하는 대통령도 있었지만, 다수는 말을 아꼈다.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비서실장이나 수석보좌관 등 참모들을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잦았고, 집권여당 대표의 입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이 왜곡돼 전달되거나,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중요한 정치일정으로 간주됐다. 대통령의 국정 구상과 현안에 대한 생각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질문을 통해 민심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1968년 박정희 정부가 신년회견을 도입한 이후 역대 대통령이 이를 건너뛰는 일은 드물었다. 언론 접촉에 인색했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국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2017년을 빼곤 신년회견을 꼬박꼬박 했다. 질문자와 내용이 정해져 짜맞춘 연극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때 등 각본 없이 진행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도 마지막 신년회견과 퇴임회견을 생략해 아쉬움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난주 국정과제점검회의를 통해 새해 비전을 대부분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과제점검회의는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각 부처가 선정한 패널들도 불편한 질문은 하지 않아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의를 현장에서 받는 신년회견과 국정과제점검회의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국민의힘 경선 룰 변경 등에 대한 대통령 답변을 들을 기회가 원천봉쇄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열린 소통’을 강조하고, 구중궁궐에서 나오겠다며 집무실 이전까지 강행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도 모자라 첫 신년회견까지 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수록 윤 대통령과 민심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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