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천만 감독' 윤제균, 10년 전 눈물이 영화 '영웅'으로 [인터뷰]
널 보낼 시간이 왔구나…
'영웅'의 어머니는 자식을 자신보다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더 이상 눈에 담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어머니의 슬픔은 노래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10년 전 윤제균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보러 간 공연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고 "언젠가 영화화하리라"고 다짐했다. 윤 감독과 '영웅'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윤제균 감독은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영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정성화)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해운대' '국제시장'을 통해 쌍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윤제균이 메가폰을 잡았다.
윤제균 감독의 특별한 주문
윤 감독에겐 '영웅'을 세계 시장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 다양한 한국 작품들이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뮤지컬 영화 '영웅'을 찾아보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관객들이 100을 기대한다면 200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들이 연기만 잘하는 것도, 노래만 잘하는 것도 안 됐다. 둘 다 극강으로 잘 하는 사람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화가 완성된 지금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등 맡은 역할을 잘 해낸 배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고도 했다.
윤 감독은 모든 배우들에게 공통된 주문을 했다. "어깨 힘 빼고, 너무 준비해 오지 말아 달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배우들이 대사만 외운 채 현장에 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펼치길 원했단다. "배우들에게 '연기하지 말자'고 했다"는 게 윤 감독의 설명이다. 배우들은 윤 감독의 요구에 따라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설렘과 고통, 두려움 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 없이 촬영장에 오면 순간순간 감정이 달라지죠. 진실한 마음 그대로를 담고 싶었어요. 연기하지 말고 감정에 충실하자는 게 가장 많이 했던 디렉션입니다."
개연성 위한 선택
윤 감독은 한국 관객들의 입맛을 맞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관객을 만족시키면 전 세계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가 개연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던 이유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뮤지컬에선 언급만 됐던 회령전투도 추가했다. 윤 감독은 "대부분이 안중근 의사가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 회령전투는 안중근 의사의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다. 안중근 군대가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준 포로가 일본군에 밀고를 한다. 안중근 의사는 부하들을 잃고 자신 때문에 죽은 전우들에게 목숨으로 빚을 갚겠다면서 거사에 나선 거다"라고 설명했다.
설희(김고은)에게도 러시아 재무장관과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는 설희가 하얼빈에 가기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면 안 되는 이유가 됐다. 설희의 행동에 명확한 개연성이 생긴 셈이다. 진주(박진주)가 사랑하는 상대도 뮤지컬에서는 안중근이었는데 영화에서는 동하(이현우)다. 윤 감독은 "진주가 안중근 의사를 짝사랑하는 모습은 관점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듯했다. 그래서 동하와 진주의 풋풋한 첫사랑으로 스토리를 변경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윤 감독은 안중근 의사와의 싱크로율을 위해 정성화에게 체중 감량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필연이 겹치면 '운명'
윤 감독과 '영웅', 그리고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연기해온 정성화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윤 감독은 "2012년 '댄싱퀸'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난 제작자였고 정성화씨가 조연이었다. 그때 때마침 '영웅' 공연을 하고 있었다. 구경하러 오라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고 입을 열었다. 당시 윤 감독은 '영웅'이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담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정확한 내용은 몰랐다. 그러나 공연을 보던 중 그는 오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서브플롯인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에서 터진 거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뮤지컬 '영웅'을 언젠가 반드시 영화화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윤 감독의 이야기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영웅' 외에도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는 다양한 작품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크랭크인 소식을 전한 영화 '하얼빈'에서는 현빈이 안중근을 연기한다. 윤 감독은 "김훈 작가님께서 쓰신 '하얼빈'도, 뮤지컬 '영웅'도, 발레 작품도 있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우연'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소설의 출간일, 공연의 대관일 등이 어쩌다 보니 겹쳤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 '영웅'에 대해서도 "원래 2020년 8월 개봉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다"고 했다. 그는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고 필연이 겹치면 운명이 된다더라. 이게 결국 운명이 아닌가 싶다"는 말로 현 상황을 돌아봤다.
윤제균 감독이 생각하는 영웅
윤 감독은 K-뮤지컬 영화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 능력 있는 감독님이 많다. 할리우드 뮤지컬을 능가하는 영화를 선보일 다른 감독님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계기가 '영웅'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님 혹은 프로듀서가 연락을 준다면 '영웅'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공짜로 전해줄 의향이 있다. 우리나라 뮤지컬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다"라고도 이야기했다. K-뮤지컬 영화의 발전을 꿈꾸는 윤 감독의 진심이 엿보이는 지점이었다.
윤 감독이 생각하는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르던 시기라면 평범한 사람 중에도 그처럼 영웅적 행동을 하는 이가 있을 거다. 안중근 의사도 지금 세대에 태어났다면 정해진 자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 특별한 사람이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 감독 역시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그를 우리 시대의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이유다. "쌍천만 감독은 과분하지만 감사한 타이틀이죠. 앞으로도 관객분들께 온기와 행복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영웅'은 21일 개봉했다.
정한별 기자 onestar1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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