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보호법과 소다(SODA)
[숨&결]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초등학생 때였나요. 아니, 유치원에 다닐 때였을 거예요. 저희 어머니의 배를 밭으로 비유해서 밭이 안 좋다, 배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 동생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환경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동생이 장남이었는데 장애가 있어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될 수 없으니 저보고 변호사가 되라고 했죠. 너는 들을 수 있으니까 듣지 못하는 동생 몫까지 더 노력하라고 말이에요.”
후지키 가즈코를 처음 만난 건 일본의 코다(CODA) 단체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에서였다. 농인의 자녀인 코다들 가운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소다(SODA, Sibling of Deaf Adults·농인의 형제자매)라고 소개했다. 코다와는 다른 경험을 하지만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 가족으로서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돌봄 청년(Young Carer)으로 성장한다는 점이 비슷했다. 얼마 뒤 그는 농인의 형제자매 모임을 결성해 대표로 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활동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이 문장 때문이었다.
“장애아를 낳은 어머니가 그런 대접을 받는 걸 보니 저 역시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밭이 좋지 않다면 그 밭에서 태어난 저 역시 유전적으로 그 밭을 물려받은 것일 테니까요. 제 안의 우생사상을 발견한 순간이었죠.”
가즈코는 대학에 다니면서 1948년 제정돼 1996년에 폐지된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알게 됐다. 그로 인해 많은 장애인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거나 임신중지를 해야 했다는 사실도 함께. 분노보다는 슬픔과 무력감이 먼저 찾아왔다. 당시는 연애와 결혼을 한참 고민하던 때였다. 교제하던 애인에게도 장애인 형제가 있다는 걸 쉽사리 말하지 못했다. 장애인 가족이라 차별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변호사가 됐다. 재생산 권리에 관해 고민해보고 싶어 옛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 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 변호인단에 들어갔다.
“제가 만난 원고 중 하나는 농인 고바야시 부부예요. 결혼하고 임신을 했는데 양가 부모님이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죽어서 썩었으니 제거해야 한다고 강제로 병원에 데려갔대요. 남편이 화가 나서 어머니를 불러 왜 그랬느냐고 따졌대요. 그러자 어머니가 밧줄을 가져와서 나를 죽이라고, 죽여보라고 했대요. 그 아이가 그분에게는 손자였을 텐데. 손자를 죽이고 싶어서 죽이려는 게 아니잖아요. 악법이 가족을 붕괴시킨 거죠. 배 속의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면 지금 60대가 됐을 거예요. 제게 수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60대 코다거든요. 이 세상에 태어난 코다도 있고 태어나지 못한 코다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는 소송을 대리하면서 만난 원고에게서 용기를 얻는다고 말한다. 50년도 전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이들이 “아이를 갖고 싶었다”고 정확하게 말하는 걸 보고 부러웠다고 고백한다. 사람은 장애 유무를 떠나 모두 평등한데 자신은 남동생의 장애를 능력으로 극복하려 했었다고, 그래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말이다. 가즈코는 자신의 우생사상을 고백할 수 있는 힘을 이 소송으로부터 얻는다고 말한다. 가즈코와 같은 소다 중에도 유전적으로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있다며 옛 우생보호법에 의해 불임시술을 받은 피해자가 있다.
농인 원고의 변호사가 되어 우생사상과 싸우지만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있으니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하던 가즈코는 이제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장애아여도 장애아가 아니어도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그건 그가 농인의 형제자매 모임을 만들고 소다 당사자이자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쌓아온 경험 때문일 테다.
가즈코는 옛 우생보호법과 지금도 다른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는 우생사상 아래 태어난 코다는 정말이지 축복이며 놀라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를 카메라에 담으며 생각한다. 언젠가 그 말을 꼭 되돌려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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