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부모와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를 화나게 하지 마라

한겨레 2022. 12. 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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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가 열렸다.

희생자들은 온전히 위로받고 극락으로 갔을까?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지난여름, 폭우로 서울이 물에 잠기고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시멘트 수급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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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연 ‘화물노동자 업무개시명령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기자회견’에서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왼쪽 다섯째)이 발언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안전운임제 연장 등을 요구하며 지난 12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 중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왜냐면] 명진 | 평화의길 이사장

지난 1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가 열렸다. 희생자들은 온전히 위로받고 극락으로 갔을까?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나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희생자들은 지금 구천을 떠돌고 있다. 억울함과 한이 손톱만큼도 풀리지 않은 탓이다. 남겨진 유가족들은 또 어떤가.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그들은, 날벼락 같은 혈육의 죽음 앞에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22년 10월29일 그 밤,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해나 있었던 축제가 열렸을 뿐이다. 그 거리에서 158명이 일시에 목숨을 잃었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기이한 소식은, 다시 들어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억울한 죽음들 앞에서 어떤 위로가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1974년 2월22일,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훈련병 159명이 목숨을 잃은 해군예인선(YTL) 침몰 사건 당시 동생을 잃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면도칼로 베는 것같이 저릿하다. 그래서 세월호를 떠올리면 가슴이 애리고, 이태원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허니 정부는 더는 자식 잃은 부모를 화나게 하지 마라! 온 세상의 분노와 마주하게 될 것이니.

그날 그 자리에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는 있었던가? 희생자 158명은 지켜줄 나라 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다. 국가의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서 죽어갔다. 잘못을 따진 뒤에 책임을 묻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앞에서 정부의 무능, 무책임은 범죄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 사람을 버려야 하고, 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 가정을 버려야 하고, 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 마을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나라의 재물이라도 버려야 한다.”

지난여름, 폭우로 서울이 물에 잠기고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장대비로 저지대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도 아무 일 없는 양 퇴근했던 자가 대통령이란다. 그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아, 이 사람은 인면일 뿐 수심을 가졌구나! 이 자를 믿고 살아서는 목숨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구나!

올해에만 철도노동자 4명이 숨졌다. 11월5일, 화물을 운송하는 오봉역에서 청년 노동자가 선로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인 만큼 철저히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4개월 이상 걸리지만, 정부가 나서서 아무런 재발방지책도 없이 19일 만에 작업을 재개시켰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시멘트 수급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파업도 그렇다. 이 나라 국민치고 덩치 큰 화물차가 쌩쌩 달릴 때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는 없을 것이다. 14시간씩 운전하며 졸음운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운임제? 함께 먹고 살자고, 안전하게 살자고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정부가 한 약속을 지켜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게 귀족이라고 떠드는 정부와 언론들, 부러워하는 당신네들이나 졸음을 참으며 하루 14시간 죽을 둥 살 둥 일해 보라.

이태원 참사? 안전운임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 없다. 사람답게 사는 삶, 저녁이 있는 삶?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다. 이제 우리는 믿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우리가 두 팔 걷어붙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선진국이니 문화강국이니 했던 나라를 반년 만에 지옥 같은 나라로 만든 자를 반품 처리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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