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귀엽게 말하기’라는 선택지

한겨레 2022. 12. 2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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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지난 5월2일 광주 북구 전남대 교정에서 학생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최근 <워싱턴포스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미국 제트(Z)세대 언어생활에 관한 기사로, 윗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유행어와 이모티콘 사용을 다루고 있었다. 언론에서 언어변화를 다룰 때는 주로 단어나 표현에 관해서이고, 발음 변화에 주목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래도 발음은 고정된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발음 역시 늘 변화하지만, 그 변화는 단어나 표현과 달리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가을 한국에 머물면서 발음 변화를 둘러싼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첫번째는 어미 ‘~요’ 발음과 억양 변화다. 긴 모음도, 이중모음도 아닌 ‘~요’ 끝을 길게 발음하는 이들을 자주 봤다. 이처럼 길게 발음하는 중간 부분은 ‘우’와 비슷하게 들려 이중모음처럼 변하고 있다. 아울러 목소리 톤이 함께 올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또 어떤 경우에는 반대로 ‘~요’가 길어지긴 하지만 소리는 변하지 않고 톤은 오히려 내려간다. 개인차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귀엽게 말할 때는 음조가 올라가고 뭔가를 설명하거나 양해를 구할 때는 음조가 내려갔다.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했는데’와 비슷한 경우 ‘~데’가 ‘뎨’처럼 들리는 경우다. 내 귀에 자주 들린 ‘~데’는 주로 음조가 올라갔다. 대체로 귀엽게 말할 때 자주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안내 방송에서, 특히 무엇을 하지 말라는 내용을 전할 때는 정확한 표준어 발음을 사용하면서 대체로 매우 평평한 음조를 유지한다. 한국어의 표준어는 영어나 이탈리아어처럼 한 음절을 더 강하게 또는 길게 발음하지 않고 평평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안내 방송에서 표준어에 맞게 발음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표준어의 중립성과 권위를 통해 대중에게 지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상업 공간의 안내 방송은 음조를 조금 올림으로써 밝고 친한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지침을 전달하는 방송에서는 평평한 음조를 사용한다.

이런 발음과 음조 조절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언어학의 한 분야인 ‘화용론’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 포털 국어사전에서는 화용론을 “말하는 이, 듣는 이, 시간, 장소 따위로 구성되는 맥락과 관련하여 문장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의미론의 한 분야”로 설명한다. 대화를 대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말이 중요한 화용론은 발음, 음조, 억양, 어조 등 말의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 의미 전달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말하는 이는 전달하고 싶은 의미에 맞게 단어나 표현뿐만 아니라 소리도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조절한다.

앞서 언급한 어미 ‘~요’, ‘~데’의 발음과 음조 변화 역시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즉, 말하는 이가 일부러 어떤 언어적 이미지에 맞게 조절한 것이다. 그 이미지는 어떤 걸까? 20세기 말 한국은 경제성장에 따라 급속도로 도시화했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시와 중산층 중심의 선진 민주국가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말하는 방식도 새로 형성된 도시 중심 산업사회에 맞게 변했다. 오늘날 도시 중심 산업사회인 한국에서 귀여운 것은 곧 젊고 유쾌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다. 그 결과 ‘여성스러움’을 요구받는 여성은 더욱 영향을 받고,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의 영향으로 귀엽게 말하는 것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개인의 도구로 활용된다.

반대로 귀엽지 않은 표준어의 비교적 평평한 음조는 권위의 과시를 위한 또다른 선택지다. 공공기관에서 대중을 향해 지침을 전할 때는 의도적으로 ‘귀엽지 않은’ 쪽을 선택하지만, 개인 역시 그럴 수 있다. 평소 사적인 자리에서 귀엽게 말하던 사람도 공적 자리에서는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언어 역시 잠시 유행하다 사라지기도 한다. 단어와 표현이 대표적이다. 발음 변화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한때의 유행이라기보다 뿌리를 내려 오래 가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예로 들자면, 18세기 후반 런던을 중심으로 모음 뒤에 ‘r’이 탈락하고 모음을 길게 발음하는 것이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이는 19세기 문턱까지 영국의 많은 지역은 물론 미국 항구 도시 상류층에까지 퍼져 나갔다. 하지만 영국의 변방과 미국의 수많은 지역에서는 ‘r’ 발음이 유지됐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지역마다 그때 그 발음 변화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보자면 오늘날 한국에서 유행하는 ‘귀엽게 말하기’는 이후로도 꽤 오래 듣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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