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나는 차별 없는 코리아를 계속 꿈꾼다
섹 알 마문 |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
1998년이었다. 나는 뭐라도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에 노동자를 보내는 업체에 7백만원을 주고 한국에 오게 됐고,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가구단지 가구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1년이었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공장에서 일을 그만하게 돼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공장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를 통해 당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ETU-MB)를 알게 됐고,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나서서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필요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주노동자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국 사람으로 귀화했지만, 여전히 피부색이나 외모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러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내고 있는 이유다. 이주노동자노조(MTU)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에 많은 이주노동자가 상담받으러 온다. 한국과 동남아시아 16개 국가가 맺은 합의각서(MOU)에 따라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근로조건 위반, 성희롱, 폭언, 폭행, 괴롭힘, 산업재해, 임금체불, 열악한 기숙사 등 사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도 가해자인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노동부 고용센터에 그런 일을 당했음을 입증해야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 있다.
그런 사업장 변경 제한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강제노동으로 내몬다. 보통 노동자들도 그렇겠지만, 사직은 이주노동자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사직은 노동자가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소극적인 방어 방법이지만, 그마저 법으로 금지하는 게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경기도 의정부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A씨는 사업주가 일을 안 시켰다. 사업주는 마음에 안 든다고 무조건 ‘나가라’고 하고, ‘너한테 줄 일 없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노무수령을 거부했다. 심지어 신분증 구실을 하는 외국인등록증을 복사하고 준다면서 가져갔으나 아직껏 돌려주지 않는다. ‘불량’이라는 항목으로 급여에서 이유 없이 50만원을 공제하기까지 했다.
이런 처사는 A씨의 사업주가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 ‘제5조(부당한 처우 등)의 6. 사용자가 임금 또는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근로 제공을 5일 이상 거부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외국인등록증을 압수하는 행위는 출입국관리법 등에도 위반된다. 이주노조를 통해 A씨는 노동부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1~2주일 안에 고용센터 직권으로 사업장 변경을 처리해줘야 하지만, 사건을 접수하고 지금까지 거의 한달반이 넘도록 처리해주지 않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사장에게 얻어맞는 이주노동자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말이 안 통하니 고소장조차 제대로 접수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경찰서에 가도 말이 잘 안 통해서인지 조사가 제대로 안되고 별 도움이 안된다. 통역해주는 시스템도 제대로 없다.
그런 이주노동자들과 고용센터에 함께 가면 고용센터에서도 똑같은 차별을 당한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리고 있을 때 고용센터 직원들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사업주를 먼저 불러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한시 바삐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인데도 하루이틀씩 길어지고, 결국 이주노동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면 대개 고용센터에서는 사업주와 통화하고 난 뒤 ‘문제없으니 다시 가서 일하라’며 노동자를 다시 원래 사업장으로 돌려보낸다.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우해서도 안된다.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해서 이주노동자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가. 지난 24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차별적인 모습들을 계속 보고 느낀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끼지만, 이주자 그리고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내가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차별 없는 사회를 계속 꿈꾼다. 이주노동자가 평등하게 일하고, 존중받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조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화 만드는 일도 계속해나갈 것이다.
※도움: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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