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 ‘이건희 컬렉션’ 뜨거운 성황···국립현대미술관·한국문화예술위원회 논란 빚기도[2022 미술계]

도재기 기자 2022. 12. 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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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시장 세계속으로, 미술계에 큰 숙제 남겨
급성장 우려 미술시장, 경기침체 속 조정국면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갑질’, 한국문화예술위 ‘한국관’ 논란 빚어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원년·미술품 물납제는 내년 시행
한국에 첫 진출한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이 지난 9월 한국국제아트페어와 동시에 열려 뜨거운 주목을 끌었다. 사진은 ‘프리즈 서울’ 행사장 입구에 입장객들이 몰려든 모습이다. 한수빈 기자

미술계는 올 한 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활기를 되찾았다. 미술관·갤러리의 국내외 작가 전시회, 비엔날레들이 이어졌다. 한국 미술시장 성장세를 반영하듯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이 처음 열리는 등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마련됐고, 해외 갤러리들의 국내 진출같이 국제적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지난해처럼 여전히 성황을 이뤘다.

반면 한국을 대표·상징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갑질과 전시 오류 논란 등으로 눈총을 받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을 둘러싼 파문으로 미술계가 시끄러웠다. 청와대 활용을 놓고 정부가 준비 부족으로 오락가락하면서 갖가지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미술계는 시각문화 전시장으로의 활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올해 시행됐고, 미술계의 숙원이던 미술품 물납제도 마련돼 내년부터 시행된다.

미술계의 올해 가장 큰 화제는 역시 ‘프리즈 서울’였다.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영국의 프리즈가 아시아 최초로 9월 서울에서 열렸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동시에 열리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미술품 장터가 마련됐다. 해외 미술계의 높은 관심 속에 초고가의 역사적 명작부터 신진작가들의 작품까지 출품됐고, 기획전과 강연회 등 부대행사도 풍성했다. 입장객 제한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컬렉터 등이 몰렸고, 거래 금액은 수천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프리즈의 서울 진출, 해외 갤러리·경매사들의 서울을 향한 관심은 한국 미술시장의 위상 확보와 국제무대 진출, 시장 확대의 계기로 관심을 모았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기대만큼이나 치열한 경쟁의 세계 미술시장 체제에 한국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우려 목소리도 높았다. 자본력과 컬렉터·작가군 등 관련 네트워크가 훨씬 우월한 외국 갤러리에 맞설 수 있는 국내 미술시장 주체들의 자생적 생존과 국제 경쟁력 확보라는 큰 과제를 떠안은 것이다. 프리즈 서울은 새해에도 KIAF와 함께 9월에 열린다. 국내 미술시장의 유통구조 개선, 적극적 신진작가 발굴과 육성, 국내외 컬렉터와 작가 확보 등 전반적인 체질 개선과 투자 노력, 국제 경쟁력 제고가 요구되고 있다.

미술시장은 올해 풍부한 유동성, MZ세대의 폭발적 관심 등으로 이상과열 우려 속에 급성장했다. 연평균 5000억원대의 시장 규모가 9200억원대로 급성장하며 1조원 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아트페어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하반기부터 세계 경기침체 속에 경매사 낙찰총액이 급락하는 등 시장 열기도 급랭하고 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공동대표(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온탕에서 출발해 냉탕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한랭전선의 중심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NFT(대체불가토큰) 미술품 거래, MZ세대의 역할 등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등 성황을 이뤘다. 사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중섭‘의 개막 당시 전시장 일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느 해와 달리 국립현대미술관이 논란의 중심에 선 한 해였다. 연초부터 미술관 노조가 내부 갑질과 부당 인사 등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태조사를 벌여 대책안을 마련하고, 국립현대미술관도 내부적으로 갑질 근절대책 등 조직문화 개선책을 마련했으나 지난 5월 공석이 된 학예실장 자리가 아직까지 비어 있는 등 뒤숭숭하다. 여기에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등을 비롯해 전시의 부실, 작품관리 논란도 나와 특별감사까지 받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청와대의 활용을 놓고 정부의 종합적 마스터플랜 준비 부실, 여론수렴 부족 등 행정 난맥상에 따라 문화계가 유례없이 분열되기도 했다. 문체부가 전시 중심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의 청와대 활용 방안을 발표하자 미술계 54개 단체는 시각문화 중심의 복합문화공간화를 지지하는 환영 성명을 내놓았다. 반면 문화재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문화재위원회의 각 분과위원회 위원장단이 이례적으로 긴급 모임을 가졌고, 문화재청 노조는 청와대의 역사성과 장소적 특성을 무시하고 활용을 위한 제대로 된 조사·연구가 없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문체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최의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으로 고등학생의 풍자만화 ‘윤석열차’가 선정·전시되자 이를 문제 삼아 해당 기관에 ‘엄중 경고’를 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블랙리스트 부활 등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청와대 활용을 놓고 갖가지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를 둘러보는 모습이다. 성동훈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으로 고등학생의 풍자만화 ‘윤석열차’가 선정, 전시되자 해당 기관에 경고를 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빚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열기는 올해도 계속돼 이제 지방 순회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이건희 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명작’전은 연장 전시 끝에 지난 6월 막을 내렸고, 총 25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현재 진행 중인 ‘이중섭’ ‘모네와 피카소’ 특별전에도 관람객 발길이 계속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도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국립광주박물관·광주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지방 순회전에 들어갔고 해외 전시도 협의 중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둘러싸고 미술계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한국관 예술감독 선정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지면서 심사절차를 다시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이영철 예술감독과 김윤철 작가 간 볼썽사나운 갈등도 공개됐다. 한국관 전시는 무사히 마쳤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부실한 행정 등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국내 곳곳에서도 부산비엔날레·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창원조각비엔날레·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등이 열렸고, 제주비엔날레는 진행 중이다. 비엔날레는 2년마다 동시대 국내외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국제미술제다. 올해도 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관람객도 많이 찾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미술계 담론이나 이슈 제기 등 비엔날레 본래 취지에 걸맞은 성과는 부실해 좀 더 깊은 준비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의 시행, 상속세법 개정에 따른 미술품 물납제도의 마련과 내년 시행은 의미가 크다. 특히 상속받은 미술품·문화재의 가치에 매기는 상속세를 현금 대신 문화재·미술품으로 대신 납부할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도는 국내 문화재·미술품의 해외 유출 예방, 미술품의 공공자산화 확대에 따른 국민의 문화향유권 확대 등의 의의가 있다. 문화재 및 미술품 물납 대상 여부 및 가치평가 기구의 설립,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같은 관련 법률의 개정 등 세부적인 숙제가 많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미술계도 역시 복잡다단한 일들이 많았고, 어느 때보다 격정적인 한해였다”며 “국공립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의 책임과 역할, ‘윤석열차’ 논란 등으로 표현의 자유 가치를 되묻는 계기가 된 한 해”라고 평가했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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