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아바타2', 기술력이 드라마를 이겼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기술의 진화를 기다렸다"
영화 '아바타:물의 길'(이하 '아바타2')을 무려 13년 만에 완성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편으로부터의 긴 공백에 대해 이 같은 이유를 댔다. 3,4,5편을 동시에 기획하며 이를 구현할 때 필요한 기술도 미리 구축해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의 시작과 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고, 기술은 부수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그러나 그 영화가 '아바타' 시리즈와 같은 '시각의 영화', '체험의 영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바타2'를 향한 관객의 반응을 보면 기술 구현에 대한 제작진의 집착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영화에 대한 크고 작은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관객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기술의 성취에 대한 극찬이다.
장장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은 관객을 TV와 모바일에 뺏겼다. 영화 관람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시대에 등장한 '아바타2'는 감독의 호언장담대로 극장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며 '영화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한다.
◆ 우림에서 바다로…총천연색 해양 세계, 눈의 호사
'아바타2'는 가정을 꾸린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에게 또다시 지구인들의 공격이 계속되자 살아남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과 전투를 그린다. 1편이 우림에 사는 종족들이 인간의 개발로 위협받게 되는 모습을 담았다면, 2편은 바다로 배경을 옮겨 바다 생태계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고 우리의 선택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그린다.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숲에서 바다로 옮겨간 것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임스 카메론은 물이 등장한 영화에서 남다른 역량을 빛내왔다.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물 먹는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기도 했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던 '어비스'의 경험을 토대로 '타이타닉'이라는 역작을 만들어내며 바다를 배경으로 한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열었다.
'아바타2'는 '체험의 영화'로서 전편을 능가하는 볼거리를 선사한다. 진화한 3D 효과에 더해 많은 장면을 하이프레임레이트(High Frame Rate, 종전 영화의 두 배인 1초당 48프레임으로 촬영되는 기법), 하이다이내믹레인지(High Dynamic Range, 생생한 화면을 구현하는 디지털 화상 처리 기법)기술을 적용해 촬영했다. 그 결과 캐릭터들의 동작은 더욱 자연스럽고 명암은 더욱 또렷해졌다.
또한 수중 퍼포먼스 캡처 촬영에 임한 배우들의 노고로 인해 바다로 삶의 터전을 옮긴 캐릭터들은 더욱 생생하게 묘사될 수 있었다. 배우들이 온전히 숨을 참은 상태로 디테일한 감정 연기는 물론, 크리처들과 상호작용하는 장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진정한 기술력의 진화를 실현해 냈다.
'에이리언'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입증된 제임스 카메론의 크리쳐 창조 능력은 '아바타' 시리즈에서 정점을 찍는다. 전편에서 활약한 비행 생물 '이크란'의 뒤를 잇는 해양 생물 '일루'가 등장하고, 고래를 닮은 신비의 생물체 '쿨툰'은 로아크의 방황과 성장에 기여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밖에 바닷속에 수많은 물고기와 산호초 등도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 가족의 성장 다룬 이야기…호불호는 갈린다
'아바타2'의 화려한 비주얼은 가족 서사로 귀결되는 이야기와 결합한다. 1편이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면, 2편은 가정을 이룬 설리와 네이티리 그리고 그의 아이들을 통해 가족애를 부각한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생물학적 아이인 네테이얌, 로아크, 투크티리 그리고 마음으로 낳은 키리가 있다.
제이크는 아바타로 살기로 결정하면서 정체성의 딜레마를 극복했다. 그러나 쿼리치 대령의 부활로 인해 그는 가족의 안전뿐만 아니라 나비족 전체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또 한 번 직면하게 된다. 결국 판도라를 떠나 바다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멧케이나 부족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게 되고, 제이크의 가족들은 새로운 터전에서 정착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와 네이티리 2세들은 큰 혼란에 직면한다. 특히 둘째 아들인 로아크는 사사건건 사고를 치고, 키리는 형제들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이야기와 캐릭터 등 시리즈 전반의 토대를 마련하고, 거시적인 메시지를 구축했던 1편에 비하면 2편은 매력적인 이야기보따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야기의 중심이 부모 세대에서 2세대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개별 캐릭터에 활력을 부여하고자 한 노력은 엿보이지만, 이야기의 창의성과 흡입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1편의 제이크처럼 중심축이 되는 캐릭터가 없다. 여러 캐릭터에 무게를 분산한 것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포석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 안에서는 캐릭터로 인한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주진 못한다.
2편은 3,4,5편을 위한 징검다리 기능을 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짧게 잡아도 2~3년의 기다림을 요한다. '아바타2'의 경우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나온 속편이 1편을 능가하는 2편이 아닌 뒤이을 속편을 위한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한 선택이 아찔한 결과를 낳지 않은 건 결국 '아바타' 시리즈가 관객에게는 이야기의 영화라기보다는 VFX(시각특수효과)에 특화된 영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기 때문이다.
◆ 상생의 나비족vs이기의 인간들
'아바타' 시리즈를 관통하는 테마는 생태주의다. 제임스 카메론은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제국주의와 환경 착취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넣었다. 특히 바다로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오면서 인간들이 개인의 욕심을 위해 바다 생태계와 생물을 파괴하는 참혹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고래사냥을 연상케 하는 쿨툰 포획 장면이 대표적이다.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는데 효과가 있다며 쿨툰으로부터 '암리타'를 채취하는 장면은 충격과 경악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은 정복이자, 착취의 대상으로 그려지지만 자연이나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명백한 침략자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쿨툰의 시점샷을 통해 그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더욱이 이 장면은 로아크와 쿨툰이 서로를 동일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롱시퀀스와 대비를 이루며 그 잔혹함은 배가된다.
반대로 나비족과 멧케이나 부족은 상생과 연대를 통해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침략자들에 맞서 싸운다. 이들 역시 같은 듯 다른 미세한 차이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끝내 하나가 된다.
후반부 장장 1시간에 걸친 수중 액션 장면은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는 자의 처절한 사투와 가족애가 어우러지며 엄청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제임스 카메론의 전작들에서 봐온 액션 장인으로서의 면모가 물량과 기술과 만나 화룡점정을 찍는다.
◆ 흥행, 어디까지 갈까…특별관이 견인할 롱런
'아바타2'는 지난 14일 개봉해 3일 만에 100만, 5일 만에 200만, 개봉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주 차 평일에 접어들며 관객 수가 20만 명 대 중반으로 떨어졌지만 추세는 나쁘지 않다.
2009년 '아바타'의 흥행 기록(약 1,333만 명)은 무려 16주간의 롱런 끝에 만들어졌다. 당시 '전우치'라는 한국 영화 대작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영웅'이라는 대작이 출격한다. 그러나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둘의 대결이 박빙 양상으로 갈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아바타' 시리즈는 특별관 예매 비중이 높다. 3D 영화라는 특별한 포지셔닝으로 인해 '극장용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진 코로나19시대에도 40% 가까이 비싼 티켓 비용을 지불하는 관객이 적잖다. 이 영화를 아예 안보는 사람은 있어도 OTT로 보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초반의 흥행세가 다소 약해 보여도 특별관 예매를 노리는 잠재 관객들, 2D로 1차 관람 후 3D로 재관람을 노리는 관객의 수치가 올해 개봉한 어느 영화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가 예상하는 '아바타2'의 최종 관객은 '800만+a'다. 설사 천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하더라도 압도적인 특별관 예매 비율로 인해 코로나19 시대에 기록적인 매출액을 달성할 수도 있다.
'아바타'의 흥행 기록이 놀라운 건 코믹스 기반의 원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리메이크작도 아닌 순수 창작 블록버스터라는 점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미지의 세계를 창조하고 캐릭터를 디자인하며, 새로운 언어까지 만들어낸 '영화 조물주'로서의 역량이 여전하다는 것을 '아바타2'로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스스로를 '세계의 왕'이라 지칭했던 건 예나 지금이나 근거 있는 자심감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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