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신재생·러시아 믿다 전기료 6배 폭등···유럽 전력대란 타산지석으로”

권구찬 기자 2022. 12. 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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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한국은 ‘에너지 고립 섬’···유럽처럼 신재생 선도국 못돼
원전·화력연료 중요성 간과하면 에너지 안보 위기 초래
우크라전쟁 끝나도 세계 에너지 대란 2025년까지 지속
전기료 결정 독립성 시급···찔끔 인상은 절약 효과 없어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독일이 탈원전을 선언한 것은 유럽 대륙 간 전력망이 연결돼 유사시 전기를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신재생 확대는 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지만 에너지 고립 섬인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앞서 나가다가는 에너지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과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합친 신조어로 2년째 이어지는 세계적 에너지 대란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탄소 중립, 친환경이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국마다 태양광·풍력 투자를 확대했으나 되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지고 가스·석유 가격 폭등을 야기한 현상을 말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를 만든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끊기자 올 여름철 온수 공급을 중단하고 전기요금을 5~6배 인상하는 등 사실상 에너지 위기와의 전쟁에 돌입했다”며 “에너지 고립 섬인 우리나라는 유럽의 비상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이렇게 취약해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유럽은 가스 공급망을 끊으면 러시아가 되레 손해 볼 것이라고 판단하고 배짱을 부렸다. 미국은 러시아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의존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는데도 유럽은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에너지 위기의 기폭제로 작용했지만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지금은 공급망 차원의 2차 위기이고 1차 위기는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1차 위기는 왜 발생한 것인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됐다. 유럽은 북해 해상 풍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지난해 유달리 바람이 불지 않아 출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까지 겹쳤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북유럽은 수력발전 규모가 엄청나 남는 전력을 수출해왔는데 이게 여의치 못했다. 결국 영국은 지난해 블랙아웃(대정전) 사태를 겪었다. 유럽은 대신 수요 억제를 위해 전기료를 지난해 초부터 지금까지 5~6배쯤 올렸다. 말이 좋아 5~6배 인상이지 사실상 전쟁 수준의 충격이다. 올여름에는 온수 공급까지 끊었다. 전기료가 너무 비싸 냉장고에 든 음료수와 상온의 음료수 가격이 다르다. 유럽의 전력 대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천연가스 가격은 얼마나 올랐나.

△1차 에너지 위기 이전인 재작년과 비교하면 최대 35배가량 올랐다. 2년 전 1 MMBtu(천연가스 거래 단위)당 고작 2달러에 불과했지만 올해 70달러를 찍은 적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유럽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점이다. 원래 액화천연가스(LNG) 최대 수요국인 동북아 3개국에는 국제 시세보다 비싼 ‘동아시아 프리미엄’이 붙는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 유럽 계약분이 더 비싼 기현상이 발생했다. 우리나라가 70달러에 들여올 때 유럽은 90달러에 수입했다.

IEA 화석연료 섣불리 감축 말라 경고
독일이 2030년까지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던 석탄발전을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에 대응해 재가동했다. 8월 독일의 최대 에너지 기업인 유니퍼가 재가동한 하이덴 화력 발전소. EPA=연합뉴스

-에너지 위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현재의 위기는 2025년까지 간다. 가스는 액체 상태인 LNG로 도입해야 하는 데 관건은 저장 시설이다. 저장 탱크를 금방 확충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공급 가능한 물량은 2025년까지 연간 4억 톤으로 사실상 고정돼 있다. 2026년 공급량이 늘어날 것이다. 이때까지는 사실상 다른 방도가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연초에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 감소를 확인하기 전까지 공급을 축소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시사적이다.

-한국전력의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전기요금은 1㎾h당 125원이지만 원가는 270원을 넘는다. 한전의 올해 예상 적자 37조 원을 털어내려면 요금을 지금보다 두 배쯤 인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전은 일단 연말에 50원가량 올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에너지 과소비를 막으려면 어느 정도 충격이 필요하다. 영국과 독일은 내년도 전기요금을 1㎾h당 1470원 정도로 예고한 상태다. 우리보다 10배 이상 높다. 에너지 위기에 견디려면 이번에는 절약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올 들어 세 차례 찔끔 인상한 결과 절전 효과가 거의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기요금을 억눌렀다. 그래서 전기료의 탈(脫)정치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건은 전기요금 결정 때 독립성을 확보하느냐다. 2018년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만들 때 전문가 초안에는 그런 내용이 있었지만 정부가 반영하지 않았다. 프랑스와 일본은 아예 독립적 에너지 규제 기구를 두고 있다. 해외처럼 하려면 물가안정법에 있는 정부의 요금 심의 조항을 삭제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방안이 어렵다면 물가 당국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법이 있다. 물가 당국의 의견을 반영하되 재심의 안을 최종 요금으로 확정하는 방식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어떤 방식이든 독립성 확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도입해 발전 회사의 반발이 심한데.

△전기료 인상 요인을 흡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 제도로 한전은 1㎾h당 원가가 270원인 전기를 발전 회사로부터 160원 수준에서 사들인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지만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몇몇 발전 회사들이 로펌을 선임한 것으로 안다. 중소 발전사로서는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전기료를 충분히 올리지 않으면 발전사가 돈이 없어 연료를 사오지 못해 블랙아웃 사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가스와 석유 등 화석연료 대금 결제는 국제 관행상 현찰 박치기다. 가스 소비자 요금도 2~3배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

가스 비축 9일치···비상시 민간 수입분 재판매를
세계적 에너지 위기로 올 들어 세 차례 인상된 전기요금이 연말 또 한 차례 오를 예정이다.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 설치된 전기계량기.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수급에는 문제가 없는가.

△그동안 높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물량을 확보해왔다. 다만 중국이 코로나19 봉쇄를 풀고 있어 올겨울 북극 한파가 닥치면 수급이 불안할 수 있다. 비축량을 7일에서 9일 소비분으로 늘렸지만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석유를 100일 치 비축하는 데 비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것은 아니다. 가스는 저장 중 조금씩 날아가 장기 보관이 어렵다. 여름에는 사용량도 많지 않아 비축 규모를 마냥 늘리기도 어렵다. 그나마 대안이 민간 회사 수입분을 활용하는 것이다. 민간도 가스를 수입할 수 있지만 자체 소비용에 국한돼 있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 한 해 민간 수입분의 재판매를 허용해 국가 전체적으로 가스 확보량을 늘려야 한다.

-신재생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데 우리 여건에 ‘넷 제로(탄소 순배출 제로)’가 가능한가.

△여건은 어렵지만 이미 선언한 데다 에너지와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한다. 다만 선진국도 에너지 위기 앞에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탈석탄 동맹에 미국과 일본은 서명하지 않았다. 원자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프랑스가 그런 방향이다.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독일은 여차하면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하면 되기에 탈원전 선언이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고립 섬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전기를 수입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앞서갈 필요가 없다. 지난해 2월 석유 메이저의 본산인 미국 텍사스도 정전 사태를 겪었는데 에너지 자급에 대한 과신으로 주(州) 간 전력망을 연결해 두지 않아 화를 키웠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율이 70%인데.

△탄소 중립 이행에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하지만 프랑스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오히려 블랙아웃 사태가 올 수 있다. 정전은 전기가 부족해도 발생하지만 반대로 과잉 생산해도 발생한다. 프랑스는 남는 전기를 수출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또 프랑스 원전은 출력을 20%가량 조절할 수 있지만 우리는 출력 조절이 불가능하다. 우리 원전 모델은 출력을 줄이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신재생 천국인 제주도의 신재생발전소가 올 들어 80여 차례 출력 제한(강제로 전력 생산 차단)을 단행한 이유도 블랙아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신재생 과잉·지역 편중 ‘블랙아웃 불러
2월 전남 여수시 국동항 수변공원에서 어업인들이 여수 해역의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는 전기를 육상으로 보내면 되지 않는가.

△제주도는 비상사태 때 전남에서 전기를 끌어올 수 있다. 에어컨을 켜는 여름철 밤에 주로 육상에서 지원받는다. 반대로 신재생 출력이 좋은 봄과 가을에는 남아돈다. 그래서 새로운 전력망을 전남과 연결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전남 역시 전기가 넘친다는 점이다. 전력 자급률이 180%쯤 된다. 전남은 인구가 줄어들고 땅값이 싸 태양광이 많이 깔려 있다. 만약 제주도가 남는 전기를 전남으로 보내겠다면 지역 갈등이 엄청날 것이다. 전남의 출력 제한 사태는 시간문제다. 신재생의 지역별 편중과 과잉 투자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에너지 믹스 정책을 어떻게 펴야 하는가.

△우리나라 여건과 전원별 특성을 고려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무탄소 전원인 원전과 신재생 비중이 너무 높아도 문제가 된다. 두 전원의 합계 비중이 최대 65%를 넘으면 곤란하다. 원전은 가동하는 데 사흘이 걸린다. 전기가 부족할 때 곧바로 활용할 수 없는 경직성이 단점이다. 신재생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에너지 수요는 계절과 주야로 달라지므로 전력 생산을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데 가스·석탄 발전이 그런 역할을 한다. 화석연료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권구찬 선임기자

◆He is···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자원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10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에너지·자원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같은 대학 창의융합대학장과 에너지융합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정부가 마련 중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 총괄분과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지난달 말 전기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권구찬 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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