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서구 제국주의 상징하는
콜라·럼주 병뚜껑 주워
수공예 예술로 부활시켜
베네치아비엔날레 공로상 작가
30억원대 대규모 설치작품展
가로 8m, 세로 6m의 황금빛 태피스트리가 서울 삼청동 갤러리 바라캇 컨템포러리1의 벽 전체를 덮었다. 창문을 통과한 햇살로 번뜩이고 넘실댄다.
가나 출신으로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는 작가 엘 아나추이(78)의 신작 'New World Symphony'(2022)는 이전 작품보다 여백이 더 커졌다. 벽이 훤히 드러나니 아프리카 대륙의 아픈 역사가 상처 난 살갗처럼 노출됐다. 가까이 가 보면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알루미늄 병뚜껑을 하나하나 구리줄로 꼬아서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땅바닥에 굴러다녀 짓밟히는 술병 뚜껑, 이 하찮은 존재가 모여 화려한 예술작품으로 부활했다.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황금사자상(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아나추이가 한국에서 5년 만에 여는 개인전 '부유하는 빛'은 세계적인 비엔날레전시장에서나 볼 법한 압도적인 규모가 인상적이다. 작품 가격도 무려 30억원대에 달한다. 이번 전시는 조각난 세라믹, 초기 목조 부조 작업부터 기념비적인 병뚜껑 조각까지 40년간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빛의 물질성을 탐색해온 여정을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조각의 패턴에서 구현한 모노프린트(판화) 작품은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이화령 바라캇 컨템포러리 이사는 "아프리카 노예와 물물교환됐던 것이 럼주라는 술이었음에 착안해 작가는 술병 뚜껑으로만 작업한다"며 "이번 전시는 입체보다 평면성이 더 강해지면서 거대한 추상회화로 변신했다"고 설명했다. 코카콜라 등 브랜드 로고가 선명한 병뚜껑들은 작가 스튜디오의 장인들이 펴거나 비틀리고 말리고 압착되면서 블록으로 만들어진다. 또다시 배열되고 재조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 의상(kente) 패턴도 연상시키는 금속 직물로 변신했다.
세계적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는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본성처럼 아나추이의 고정되지 않은 형태의 작품은 어떤 조건도 영구적이지 않다는 개념을 내포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국내에 새로 선보인 나무패널 작업 'of Realities and illusions'는 그을려 황폐한 땅을 연상시키고 통일된 디자인 속 불연속성이 긴장감을 준다.
판화 제작자와 함께 작업한 모노 프린트(판화와 회화의 중간 표현 형태인 평판의 종류로 보통 한 장만 찍는다) 신작은 목판화 조각으로 기존 조각 작품에서 유래한 패턴과 모양을 재배열해 다채롭게 표현했다.
아나추이 작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MoMA),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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