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쉼없이 품질 혁신 … 세계 최고수준 와인 반열 올라 [와인이야기]
⑥ 밀레의'만종' 떠오르는 와인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밀레의 '만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정작 '만종'의 뜻은 생각해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쳐 온 기억이 납니다. 최근 그 '만종'의 의미를 다시 듣게 됐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우안(Right Bank)의 생테밀리옹을 대표하는 와인 샤토 앙젤뤼스의 스테파니 드 부아르-리뷔엘(Stephanie de Bouard-Rivoal·사진)을 인터뷰하면서입니다. 그는 샤토 앙젤뤼스(Chateau Angelus) 대표이자 창업자의 8대손입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농부 부부가 겸허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요. 밀레의 만종은 프랑스 원제가 L'Angelus, 영어로는 The Angelus(앙젤뤼스)로 표기합니다.
만종(晩鐘)의 사전적 의미는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의미합니다. 밀레 그림의 배경이 황혼이라 앙젤뤼스가 일본어-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저녁'이 강조됐지만 앙젤뤼스는 원래 아침, 정오, 저녁 하루 세 번 교회 종소리와 함께 올리는 '삼종기도'를 뜻합니다. 샤토 앙젤뤼스도 포도밭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한국 와인 애호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선 샤토 무통 로칠드에 대한 느낌을 밀레의 '만종'으로 표현하는데요. 개정판이 나온다면 샤토 앙젤뤼스를 언급하는 게 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는 기자와 만나면서 멋진 명함을 건넸는데 명함엔 앙젤뤼스의 상징인 '골든벨(황금종)'이 새겨져 있습니다. 샤토 앙젤뤼스는 사실 한국보다도 중국에서 더 유명합니다. 와인의 맛도 맛이지만 와이너리의 상징인 골든벨(황금종)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는 보르도에서 태어나 와이너리가 있는 생테밀리옹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런던에서 프라이빗 뱅킹 업무를 하다 가업을 잇게 됐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를 바란다"면서 "동시에 자손들이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와인잔 안에는 와인이 담겨 있지만 와인잔 밖에는 역사와 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샤토 앙젤뤼스는 세대를 이어가며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특히 드 부아르-리뷔엘의 아버지인 위베르 드 부아르(Hubert de Bouard)가 경영에 나선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 최고급 와인의 대열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샤토 앙젤뤼스는 '세컨드 와인'을 도입하면서 브랜드 강화에 나섭니다. 샤토 앙젤뤼스의 세컨드 와인인 카리용 드 앙젤뤼스는 1987년 빈티지부터 출시되는데 그 전에는 좋은 포도와 나쁜 포도를 섞어 만들면서 품질이 일정하지 못했습니다.
생테밀리옹의 '와인 기사' 작위를 받은 이민우 비노테크 대표는 "샤토 앙젤뤼스는 품질에 대한 혁신을 가장 많이 한 와이너리"라면서 "1989년 빈티지 이후부터는 와인 수집가들이 모을 수 있는 와인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 세대라 불릴 수 있는 30년간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샤토 앙젤뤼스는 2012년 생테밀리옹 최고 와인 등급인 프리미에 그랑크뤼 클라세 A등급(Saint Emilion 1st Grand Cru Classe)으로 승급됩니다. 특히 샤토 앙젤뤼스 2014년 빈티지는 아버지 위베르 드 부아르의 30번째 빈티지로 라벨에 30년 기념작이란 디자인을 넣었습니다. 한글로도 '삼십'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샤토 앙젤뤼스는 생테밀리옹 와인등급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고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는 올해 와인등급 심사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로써 앞으로 나올 빈티지에선 샤토 앙젤뤼스의 라벨에서 와인등급이 사라지게 되는데 소비자 입장에선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샤토 앙젤뤼스는 최근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도 최고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면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보르도 좌안 와인들이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다른 품종의 포도를 혼합해 와인을 만든다면 보르도 우안은 메를로를 중심으로 와인을 만드는 게 차이점입니다. 샤토 앙젤뤼스도 메를로를 축으로 와인을 만들지만 카베르네 프랑의 비중이 거의 50%에 육박할 정도로 다른 곳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는 "스파이시한 맛을 내면서도 롱 피니시가 좋기 때문에 카베르네 프랑을 많이 사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무엇보다 카베르네 프랑이 샤토 앙젤뤼스 토양에 잘 맞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샤토 앙젤뤼스에서는 2016 빈티지부터 카베르네 프랑 100%로 만든 와인도 생산합니다. 와인 이름이 오마주 엘리자베스 부셰(Hommage a Elisabeth Bouchet)입니다. '엘리자베스 부셰를 기념하며'라는 뜻인데요.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의 증조할머니 이름이 엘리자베스 부셰입니다. 카베르네 프랑을 생테밀리옹에선 '부셰'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품질 관리를 위해 가장 좋은 카베르네 프랑만 사용하다 보니 소량 생산된 상태고, 한 와인 평론가가 100점 만점을 주면서 시장에선 구하기 힘든 '희귀템'이 됐습니다. 2016년 빈티지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한 병에 765달러에 데뷔했는데 지금은 1500달러 이하로는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해마다 생산되는 것도 아니어서 냉해 피해를 입었던 2017 빈티지는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드 부아르-리뷔엘 대표는 와이너리 운영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속성'을 꼽았습니다. 역시 좋은 와인을 꾸준히 생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특히 와인을 만드는 것도 농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기후환경 변화에 예민합니다. 날씨는 예측하기도 통제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샤토 앙젤뤼스는 와인뿐 아니라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비즈니스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2013년엔 생테밀리옹의 유명 레스토랑을 인수한 데 이어 2019년엔 보르도 중심부 부르스 광장(Place de la Bourse)에 위치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르 가브리엘'도 인수합니다. 또한 생테밀리옹의 '로지스 드 라 카데네라'는 부티크 호텔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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