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추행 논란 '결혼지옥', 어째서 오은영에게도 질타 쏟아질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남의 팬티 속을 만져도 안 되고, 내 것을 보여줘도 안 된다'고 말한다. 만 다섯 살이 넘으면 이성의 부모가 목욕할 때 아이의 생식기 부위를 직접 만지지 말라고 한다. 그게 아이에 대한 존중이다. 주사를 팔에 안 놓고 엉덩이에 놓던데, 친부라고 해도 조심해야 되는 부위다. 더군다나 가족이 된지 얼마 안 된 경우에는 더 조심해야 되지 않겠나."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하 오은영 리포트)>에서 새 아빠가 일곱 살 의붓딸에게 일명 '가짜 주사 놀이'라며 똥침을 놓는 영상을 본 오은영 박사는 깜짝 놀라 그렇게 일갈했다. 아이가 "싫다", "하지 말라"고 거듭 거부 의사를 밝혔고, 엄마 또한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아빠는 이걸 '애정 표현'이라며 자신이 "딸과 몸으로 놀아주는 타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이 나간 후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MBC 시청자 소통센터 게시판은 온통 이 프로그램에 대한 항의, 폐지 요구로 가득 채워졌다. '소아성애자를 옹호하고 문제의식 없는 정신 나간 방송', '아동성추행 장면을 어떻게 티비에서 볼 수 있죠?', '최대한 빨리 아이 보호해 주세요.. 아직도 같은 집에 같이 있을텐데 너무 걱정됩니다. 전 국민을 범죄 방관자로 만드는 겁니까?' 등등 날선 비판들이 쏟아졌고, 제작진에 대한 질타는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은영 박사에 대한 실망감도 쏟아졌다.
오은영 박사조차 질타의 대상이 된 건, <오은영 리포트>라는 이 프로그램의 형식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결혼이 지옥이 된 부부가 등장해 그 문제를 내놓고 거기에 오은영 박사가 솔루션을 내놓는 형식이다. 어떤 부부가 출연하든 오은영 박사는 마무리에 가서는 그 부부를 두둔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솔루션을 내놔야 한다. 그러니 누가 봐도 범죄의 뉘앙스가 풍기는 출연자가 나와도 오은영 박사는 결국 유화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밖에 없다.
1차적으로는 제작진이 출연자 선정에 있어서, 그것이 '상담'의 영역인지 아니면 '범죄'의 영역인지를 구분했어야 한다. 만일 시청자가 보기에 상담이 아닌 범죄의 영역으로 느껴진다면, 오은영 박사는 결국 그 범죄조차 두둔하거나 화해시켜야 하는 역할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무리수를 뒀다. 그것이 이러한 엄청난 후폭풍으로 돌아온 것이다.
2차적으로는 오은영 박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출연자 선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것이 방송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선별했어야 한다. 이번 출연자 같은 경우는 방송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고, 방송은 자칫 실제 범죄를 부부 혹은 가족 갈등이라는 포장으로 유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국민 멘토'로까지 지칭되고 있는 영향력을 가진 오은영 박사라면 이만한 책임감 혹은 사명감을 갖고 방송에 임했어야 하는 게 맞다.
애초 10부작으로 기획되어 방영됐던 <오은영 리포트>는 약 2달간의 휴지기를 가진 후 매주 방영되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번 사태는 바로 이 지점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기도 했다. 즉 10부작으로 기획됐을 때는 그 소재나 사안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취지에 맞게 풀어나가기 위해 고심할 시간이 충분했을 터다. 하지만 매주 방송은 사정이 다르다. 사안을 계속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매주 방송이 갖는 시청률 등락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결국 솔루션은 저 뒤로 가버리고 자극적인 소재만 소비되게 된 건 그래서다.
이번 사태는 과거 2018년 방영됐던 KBS <안녕하세요>의 이른바 '스킨십 아빠'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아빠의 과한 애정표현이 힘든 고2 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당시 영상은 일파만파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는 그저 예능 프로그램으로 오은영 박사 같은 전문가가 없었지만 <오은영 리포트>는 다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는 오은영 박사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오은영 박사는 이제 전문가의 차원을 넘어서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 되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그만한 영향력과 거기 따르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사실 이번만이 아니라 최근 벌어졌던 무수한 논란들까지) 필요하다면 멈춰 서서 애초 프로그램의 취지를 돌아봐야 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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