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네팔 가는 101마리 K젖소들...우월한 유전자에 열악한 환경 극복한 노하우도 함께 간다
한국 젖소 42마리가 이달 22일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네팔로 향한다. 고기가 아닌 살아있는 한국 소가 해외로 나가는 건 처음이다.이들 네팔행 젖소는 수의사까지 대동하고 여행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극진한 대접까지 받는다. 한국 젖소들이 네팔로 향하는 까닭은 낙후된 네팔 농촌에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비영리민간단체 헤퍼코리아는 내년 1월까지 다섯 차례로 나눠 젖소 101마리와 한국형 젖소 종자(종모우 2마리와 인공수정용 정액)을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편으로 네팔에 보낸다는 계획이다.
살아있는 소가 해외로 나가는 사례는 그동안 없었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은 구제역 같은 가축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살아있는 가축 교역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반출되는 모든 젖소가 개체별로 검역을 받고 개별적으로 구제역 비발생 증명서를 발급하는 조건을 적용해 네팔로 이송이 가능해졌다.
젖소들이 이동 중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도 했다. 소는 태어나고 사육되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여러 가지의 스트레스와 바이러스 감염, 2차 세균감염에 따라 급성 호흡기 질병인 수송열을 앓을 수 있다. 이번에 네팔로 가는 소들은 수송열을 앓지 않도록 백신을 두 차례 맞았다.
네팔까지 4시간 반 비행 동안 비행기 내부 온도와 습도도 승객인 젖소에 적합하게 유지하고 케이지도 아예 새로 제작했다.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항온동물인 젖소는 적정 사육 온도가 5~25도이고 영하 0.5~20도를 유지해야 체온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최초 해외 진출 한국 소 왜 네팔로 가나
이처럼 해외 반출 규제도 낮추고 항공기 운항 온도까지 바꿔가며 네팔로 젖소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네팔은 낙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9%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으로 꼽힌다. 네팔 전역에 약 750만 마리의 젖소를 보유하고 있다.한국이 젖소 39만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20배 수준이다. 전체 농가 절반이 젖소와 버팔로를 보유하고 있고 우유가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자 농가 소득원이다.
하지만 우유 생산성은 극히 낮다. 네팔 토착종 젖소의 연간 마리당 산유량은 880kg, 교배 개량종의 경우 산유량은 3000kg 수준이다. 한국 젖소의 연간 산유량 9000~1만kg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한국은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스페인 다음으로 우유 생산성이 높다. 1960~1970년대 한국의 젖소 1마리당 연간 산유량도 현재의 네팔 산유량과 비슷했다. 하지만 정부와 목장주들의 노력으로 50년간 빠른 성장을 거듭해 2021년 산유량이 1만423kg으로 늘어났다. 이를 환산하면 1970년대 젖소 1마리로부터 하루 9L 가량의 우유를 얻었다면 지금은 하루 34L의 우유를 얻고 있다. 또 한국 젖소는 세균 수를 기준으로 한 원유 위생 수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유 생산 선진국 중 네팔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이 이번에 소를 보내게 된 주된 배경이다.
◇우유 많이 나는 한국 젖소는 해외 지원과 품종 개량 노력 합작품
한국도 처음부터 높은 낙농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낙농업은 6·25 전쟁 후 쑥대밭이 됐다. 대다수 자원이 전쟁에 징발돼 가축이 씨가 마르고 낙농 기반이 모두 무너졌다.
한국이 전후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유엔은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을 설립하고 한국 식량 증산과 경제 재건을 도욌다. 이때 가축지원에 참여한 단체가 미국의 대표적 농업 분야 자선 비영리기관인 ‘헤퍼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이었다.
헤퍼인터내셔널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총 44회에 걸쳐 소 897마리, 황소 58마리를 포함해 젖소·염소·돼지·양·닭·토끼 등 가축 3200마리를 항공기와 화물선으로 한국에 보내왔다. 종란(21만8000개)과 생태계 회복을 위한 150만 마리의 꿀벌도 지원했다. 이른바 ‘노아의 방주(Noah’s Ark) 작전’으로 부르는 지원을 통해 전후 한국 낙농이 재기하는 기회를 잡았다.
◇40년만의 도약 비결은 우유능력검정시험, 우월한 젖소만 후손 낳을 수 있어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온 젖소들은 더위에 약했다. 고온다습한 한국의 기후는 적합하지 않았고 땅도 좁고 산이 많아 상당 부분 사료를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우유 생산량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목장주들과 협력해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소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소마다 개체별 식별번호(ID)를 부여해 ID별로 소가 사료 몇 kg을 먹었고 이때 우유를 몇 L를 짰는지, 아픈 곳은 없었는지 새끼는 언제 낳았는지 등의 데이터를 모두 디지털로 기록하고 있다.
낙농 농가들은 홀스타인종 가운데 우수한 품종을 가려내기 위해 먼저 국내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들만 다음 세대에 새끼를 낳도록 암소와 수소를 선별했다. 암소는 우유 성분과 골격구조, 젖을 생산하는 기관의 발달 정도를 종합적인 지수로 따져 유전능력이 좋은 상위 1% 개체만 뽑힌다. 그 다음 이 암소가 낳은 수소를 씨수소로 지정해 여기서 생산된 정액을 다른 농가에 보급했다. 이 정액으로 인공수정된 다음 태어난 암소들 중 다시 유전적 평가 결과가 높은 암소를 다시 선별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유전능력이 좋은 암소들만 남게 된 것이다. 유전능력을 떨어뜨릴 있는 근친 교배도 엄격히 제한했다. 보통 3~4세대 안에 유전적으로 겹치지 않는 정액만 근친이 없다고 판단해 사용하도록 했다.
‘우유능력검정사업’으로 부르는 이처럼 엄격한 선별 과정을 40년 넘게 이어오면서 국내 젖소는 점점 우수한 품종만 남게 됐고 한국 젖소가 지금의 생산량에 이른 것이다.
조주현 농협 젖소개량사업소 부장은 “낙농 선진국들은 낙농에 최적화된 환경이지만 한국은 낙농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을 가진 나라인데도 우유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며 “젖소 개량에서는 한국이 정책적으로 앞서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건조하고 초원이 넓은 지역에 살던 소를 지원 받아 처음 정착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이를 극복한 노하우를 가진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보니 개도국들에게 한국의 젖소 개량 시스템 노하우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캐나다 등 농업국가들이 대부분 기업식 농업으로 전환됐지만 한국은 기업형 낙농도 있지만 규모가 작은 개별 농가도 품종 개량 노하우를 보유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점도 이제 막 시작하는 낙농 후진국의 성공 모델이 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 보내는 일만큼 중요한 사후 관리
이번에 네팔로 가는 젖소들은 크라우드 펀딩과 목장주들의 기부를 통해 마련됐다. 한국 젖소의 네팔행은 민·관이 함께한 국제개발협력사업(ODA)의 새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달까지 네팔로 다섯 차례에 걸쳐 건너간 101마리의 젖소들은 헤퍼네팔이 맡아 네팔 정부와 협의 하에 농가에 보급될 예정이다.
이들 소는 네팔 정부가 수도 카트만두서 남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신둘리 지역에 조성한 시범 낙농마을로 보내져 농가로 배분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축산 전문가들도 함께 현지로 파견돼 농가에 낙농 기술을 지원하고 젖소가 잘 번식하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처럼 소마다 개체별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모바일앱을 통해 목장별로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 방식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소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바이오가스로 전환하는 기술도 전수된다. 소의 트림과 방귀, 분뇨 등에서 발생하는 메탄 가스의 양이 많은데 1마리당 우유 생산량을 더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분뇨에서 발생하는 가스는 부엌으로 보내 연료로 활용하는 바이오가스 시설 설치도 추진된다.
이규찬 헤퍼코리아 개발협력팀장은 “한국 낙농기술이 우수하지만 축산 분야의 해외 지원이 많지 않았다”며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 이번 사업이 잘 성공하도록 정착과 기술 이전에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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