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재개되자 금리 하향 기대감 고개 든다
美·日 금리 인상 등 대외 변수, “금리 상승 압력 커질 수도”
치솟던 은행권 여수신 금리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시장 일각에서는 경기침체 현실화 가능성과 은행채 발행 재개 등에 따라 향후 은행의 여·수신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기불황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리를 과감히 올리지 못할 것이란 판단 하에 은행 예·적금 금리와 함께 대출금리가 이미 정점을 지났다는 시각도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은행채 공모발행에 나섰다. 발행 규모는 신한은행이 2500억원, 우리은행이 2800억원으로 모두 20일 만기 도래 물량에 대한 차환 목적이다.
앞서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은행채 발행을 자제해왔다. 일반 회사채보다 우량하다고 여겨지는 은행채로 자금이 몰리면서 생기는 시장 불안을 완화하려는 취지였다. 은행은 예·적금, 은행채 발행, 증자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은행채를 통한 자금 조달 길이 끊기면서 은행들은 예금금리를 올려 자금을 조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은행과 저축업계 간 예금금리 경쟁이 과열되면서, 제2금융권의 자금 이탈 등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졌고 예금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비용이 늘어났다. 급기야 대출금리까지 크게 오르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최근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이 안정화하고 있다고 판단해, 은행채 발행을 다시 점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달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2조 3000억원 규모 은행채부터 차환 발행을 추진한다. 내년 1월과 이후 만기 도래분에 대해서는 발행 시기와 규모를 분산·조정해 대응한다.
시장에서는 은행채 발행 재개, 경기침체 우려 등을 고려해 예·적금 금리가 내리고, 뒤이어 대출 금리도 순차적으로 내릴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채권 시장의 자금 경색 불안도 서서히 안정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진단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공인재무분석사(CFA)는 “공사채, 은행채 신용스프레드는 레고랜드사태가 불거졌던 10월 중순 수준을 대부분 회복했다”면서 “상위등급 회사채, 여전채의 경우 약 1/3정도 되돌린 상태라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방향성은 확실히 아래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채 금리(AA-등급)와 국고채 금리(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가 빠르게 커지면 기업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되면서 지난 1일 177.2bp까지 올라 신용 위험 우려가 고조됐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은행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은행 예금 금리도 낮아지는 효과가 생긴다”면서 “수신 금리가 내리면 뒤이어 대출 금리도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 여수신 금리가 이미 정점을 지났다고 본다”면서 “경기침체가 현실화한 수준이라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이 내년에 금리 인상 기조를 계속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은행권 예금 155개 상품 중 최고 금리가 연 5%대(세전)인 상품은 7개에 그친다. ▲부산은행 더특판정기예금(최고 연 5.3%), ▲SC제일은행 e-그린세이브예금(5.2%), ▲전북은행 JB123정기예금(5.15%), ▲SH수협은행 SH첫만남우대예금(5.1%) ▲부산은행 LIVE정기예금(5%), ▲광주은행 호랏차차디지털예금(5%) ▲케이뱅크 코드K정기예금(5%) 등으로, 대부분 금리 인상에 발맞춰 나온 특별 판매(특판) 상품이다.
저축은행권의 정기예금 최고 금리도 연 5.8%로, 금리 연 6%대 예금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10월 저축은행 최고 예금금리가 연 6.5%까지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가파르게 오르던 금리가 뒷걸음질 친 셈이다.
예금금리가 내리면 대출금리의 하향 조정도 시작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전세대출 금리를 지난 9일부터 내렸고, 농협은행은 내달 2일부터 고정금리 전세대출 금리를 인하할 계획이다. 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4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단은 연 5.16%로, 지난 1일 연 5.38%보다 0.22%포인트 낮아졌다. 다만 금리 상단은 7.36%에서 7.72%로 더 높아졌다.
다만 변수는 있다.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더는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과 달리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의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중앙은행이 초저금리 금융완화 정책의 핸들을 틀기 시작하면서, 외환 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다. 이런 대외적 요인들은 국고채 금리 상승 압력을 높일 수 있다. 국채 금리가 뛰면 뒤따라 은행채 금리가 오르고. 은행채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 대출 금리도 오르게 된다.
한편,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0일 금리 인하 전환 시점 등에 대해서도 “물가가 중장기적으로 목표치에 수렴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 대다수 의견”이라며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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