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국회 앞은 지금 '통곡의 벽'…냉골 천막에서 단식으로 버틴다

조민정 2022. 12. 21.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년 예산 협상, 올해 마지막 임시국회 기간
매년 12월 국회 앞 농성천막, 대형깃발로 가득
'노란봉투법 개정' 요구 단식 3일차, 22일차 등
"국민 어려움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노조법 2조·3조 개정 촉구”,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대책 예산 반영 촉구”, “주거복지 예산 대폭 확대”, “불법대체생산 중단 한국와이퍼 단식”

본격적인 한파가 찾아오고 눈발이 날리는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은 각종 현수막이 걸린 천막들과 수많은 깃발로 ‘통곡의 벽’을 이룬다. 예산안 협상과 올해 마지막 임시국회 종료를 코앞에 두고 단식을 비롯해 천막농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연내 법 제·개정, 예산 반영을 요구하는 이들로 국회 앞은 시끌시끌하지만, 막상 국회는 내부 싸움으로 정신이 없어 국민의 요구는 들여다보지 못하는 양상이다.

노조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을 요구하며 지난 19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등이 국회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내년 예산 협상 앞두고 국회 앞 농성천막으로 가득

21일 국회 앞 1문과 2문 사이 약 65m 거리는 여느 때보다 많은 천막이 줄지어 있었다. 통상 기자회견을 진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공간을 비워두는데 도로 전체에 농성 천막이 설치됐고 대형 깃발이 하늘 위로 펄럭이며 곳곳에 큰 그림자가 드리웠다. 더는 천막이 들어설 공간도 없어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국회의사당역 인근까지 넘어갔다.

이데일리가 이날 찾은 국회 인근은 농성 천막으로 가득했다. 민주노총 국회 농성장 천막 바깥엔 “노조법 2·3조 개정, 국회는 답하라!”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칼바람을 막기 위해 청테이프로 고정한 두꺼운 비닐이 덕지덕지 붙은 가운데 천막 내부로 들어서자 보온을 위해 들여놓은 담요가 눈에 띄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단식농성과 동조 단식에 들어간 이들은 “단식농성 3일차”라고 적힌 몸자보를 입고 취재진을 응대했다.

양 위원장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노란봉투법 개정을 요구하며 지난 19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일명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사측이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지난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야당 단독으로 상정됐지만 ‘불법파업 조장법’으로 규정한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개정안 논의는 멈춰 있는 상황이다.

털모자와 바람막이 겉옷을 입고 입김을 내뱉던 양 위원장은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사태로 노동자들이 직접 원청과 교섭할 수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났다”며 “노조법 개정은 오래전부터 민주노총에서 주장해 온 문제로 이번 파업을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사위에 상정돼 본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단식 농성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1문과 2문 사이 거리가 농성천막으로 가득한 모습이다.(사진=조민정 기자)
한파 속 단식으로 투쟁 강도 높여…“국회, 경청하고 해결”

단식농성 천막은 이곳이 전부가 아니다. 인근 천막엔 지난 6월 파업으로 원청에서 47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유최안 부지회장 등 6명이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22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회의사당 1번 출구 인근엔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입법을 요구하며 10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복지수당 예산 편성 △코로나19백신 피해자 특별법 제정 △간호단독법 폐기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대 △한국와이퍼 불법대체생산 중단 등 다양한 요구안을 담은 농성장이 국회 앞을 메웠다.

이들이 국회에 요구사항을 촉구하는 방법은 장외투쟁, 1인 시위, 천막농성, 궐기대회 등 다양하지만 사실상 단식농성이 가장 높은 단계다. 매년 12월쯤이면 내년도 예산안 처리 협상이 고조되고 임시국회 기간 종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막판 농성에 돌입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11월부터 공공의료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보건의료노조가 10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했고, 차별금지법 즉시 통과를 주장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농성 등이 이곳에서 진행된 바 있다.

한파 속에서 추위를 견디고 배고픔과 싸워야 하지만 국회에서 이를 받아들일진 미지수다. 지난 2020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던 양 위원장은 당시 본회의 통과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1년 넘게 1인 시위와 수요집회를 하는 대한간호협회는 여전히 원하는 결과를 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내부 싸움에 몰두하는 국회의 태도를 지적하면서도 노조 등의 농성 방식에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는 국민을 보호하고 대변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국민의 어려움을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 등이 조금 더 효과적으로 국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도 과제”라고 덧붙였다.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입법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1번 출구 인근에 농성천막을 설치하고 10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조민정 (jjung@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