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 속 이상·3종류의 만세전…청와대서 만나는 근현대 문인(종합)
이상·염상섭·현진건·윤동주 등 서촌 일대 활동 작가 자료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멜빵 바지와 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응시하는 시인 이상, 노타이 차림에 안경을 쓴 소설가 박태원, 재킷을 입고 비스듬하게 앉은 시인 김소운.
오는 22일부터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열리는 문학 특별전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에 전시된 한 낡은 사진 속 인물들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가로 15㎝, 세로 14.2㎝ 크기로, 1934∼1935년 무렵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아동 세계를 간행 당시의 편집실에서'라는 메모와 함께 세 작가의 성명이 김소운의 친필로 각각 적혀 있어 이들의 각별한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권철호 국립한국문학관 전기시획부장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여태까지는 이미지로만 보다가 실제 원화는 처음 볼 것"이라며 전시물의 희소성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등 서촌 지역에서 활동했던 네 작가를 테마로 기획됐다.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물도 있지만, 작가들의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이상이 친구인 김기림 시인을 위해 직접 장정한 시집 '기상도'가 전시돼 있다. 모더니스트 작가, 시인으로 주로 알려진 이상이 훌륭한 디자이너였으며 빼어난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기상도'는 김기림이 200부 한정판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직접 접할 기회 자체가 드물다.
이상은 역시 친구인 소설가 박태원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삽화를 그렸는데 이 역시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상이 이때 '하융'이라는 필명을 쓴 것이다.
박태원이 쓴 다른 작품인 '애욕'에는 '하웅'이라는 하융과 거의 비슷한 이름의 청년 화가가 등장하는데 이는 삽화에 대한 보답으로 추정된다고 권 부장은 해석했다.
'해바라기', '신혼기', '추도' 등 염상섭이 나혜석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작품도 있다. 염상섭과 오래 교류했던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인 나혜석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인 셈이다.
문학사적 측면에서 눈여겨볼 전시물도 꽤 있다.
염상섭의 대표작이며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리얼리즘 소설로 꼽히는 '만세전'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세전'은 1922년 '신생활'이라는 잡지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 필화사건으로 연재가 중단됐는데 묘지가 실린 신생활 7호가 이번 전시품에 포함됐다.
또 1924년에 출간된 염상섭의 '만세전' 초판본(고려공사)과 1948년 수선사가 발행한 '만세전' 개정판도 함께 공개됐다. 개정판에는 작가가 일제의 검열을 의식해 삭제했던 내용이 다수 포함돼 한국 문학이 겪은 시련의 역사도 엿볼 수 있다.
현진건의 대표 단편인 '운수 좋은 날', '고향',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을 수록한 작품집 '조선의 얼골' 초판본이나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이 실린 작품집 '타락자' 초판본도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윤동주가 1941년에 출간하려 했으나 제자의 안전을 걱정한 스승 이양하의 만류로 발행하지 못했다가 사후인 1948년에 발행된 유고 시집으로 발행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시대상을 실감할 수 있는 자료도 있다.
전시물은 책 91점, 작가초상 원화 4점, 사진 자료 1점, 신문 자료 1점 등 총 97점이다.
행사를 주관한 국립한국문학관은 분야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소설가 2명, 시인 2명으로 배분하고 한국 문학의 다채로움을 보여주 리얼리즘(염상섭·현진건), 모더니즘(이상), 서정시(윤동주) 등으로 장르를 나눠 전시 대상 작가를 선정했다.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은 서촌이나 북촌 일대가 "많은 작가, 시인, 화가가 활동했던 창의력이 넘치는 지역"이라면서 "아름다운 작품이 시대를 건너고 견뎌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을 본다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느냐"고 전시회의 의의를 강조했다.
전시는 다음 달 16일까지 열리며 정기 휴관일인 화요일을 제외하고 예약 없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청와대를 역사·문화·예술 복합 공간으로 재구성하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두 번째 행사다.
올해 9월에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애 예술인 작품 특별 전시가 열렸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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