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윤 대통령 "20조 재정 낭비", 따져보니
최근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시작은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입니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 지난 정부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 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보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보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
-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문재인 케어'에 대한 사실상의 폐기 선언으로 읽혔습니다.
여당도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연일 문재인 케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재인 케어로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 무턱대고 보장률 높이려다가 도덕적 해이만 심각해졌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케어를 위해 돈이 어떻게 쓰였기에 이런 비판이 나오는 걸까요. 정말 20조 원이 낭비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 내역을 꼼꼼히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검증했습니다.
20조 원의 구체적 내역 분석
SBS 사실은팀이 국민보험공단이 작성한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문재인 케어 실시 이후, 원래 안 썼던 돈인데 추가로 투입된 건보 재정에 대한 구체적 데이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케어로 '20조 원'을 쏟아 부었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 말대로, 2017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5년간, 추가로 들어간 재정은 대략 20조 원 정도로 분석됐습니다. 정확히 21조 2,616억 원입니다. 지출액이 큰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문재인 케어에서 가장 많이 지출된 항목은 중증 약제비의 보장성을 완화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많게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희귀병 치료제를 건강보험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이게 4조 원이 넘었습니다.
다음은 본인 부담 상한제 항목입니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연간 부담하는 본인 일부 부담금의 총액이 일정 금액을 초과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서 초과 금액을 부담하는 제도입니다. 2004년 7월 도입됐는데, 문재인 케어는 그 범위를 넓혔습니다. 2018년 1월부터 소득 하위 50%의 건강보험 의료비 상한액을 연소득 10% 수준으로 인하했습니다.
쭉 보시면, 취약계층 부담 경감 정책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난임 여성에 대한 지원으로 9천억 원 넘게 추가로 지출됐습니다. 이는 건강보험 보장성과 더불어,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아동 의료비 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 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의료비가 절실한 노인들을 지원하는 예산도 눈에 띕니다. 노인 임플란트 7,382억 원, 노인 외래진료비 6,780억 원, 노인 틀니 4,796억 원 등입니다.
이제부터는 판단의 영역입니다. 당위적 차원에서 봤을 때 크게 문제될 예산은 없어 보입니다.
문재인 케어 '도덕적 해이' 규모는?
만일, 문재인 케어로 도덕적 해이의 수위가 보장성 강화 효과를 상쇄할 만큼 심각하다면, '문재인 케어 폐기'라는 정부·여당의 문제의식이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수준이 보장성 강화라는 대원칙을 뒤흔들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전면 폐기가 아니라 제도를 일부 보완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항목은 초음파와 MRI 항목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전체 진료비 현황입니다.
2018년에는 초음파 1,378억 원과 MRI 513억 원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초음파 1조 2,537억 원과 MRI 5,939억 원으로 둘을 합해 1조 8,476억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그만큼 이용도, 전체 진료비도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보장성이 강화되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료 서비스는 가격 탄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격이 조금만 내려가도 수요가 크게 늘어납니다. 이게 도덕적 해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간 국민들에게 필요했던 의료 서비스가 보편화된 것인지, 위 데이터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사실은팀은 보다 명확한 도덕적 해이의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감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 관리 실태 감사보고서>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감사원에서는 문재인 케어의 여러 항목들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뇌 MRI는 2018년 10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87.2억 원, 두경부 MRI는 2019년 5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4.4억 원만큼 과다하게 손실 보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감사원, <건강보험 재정 관리 실태 감사보고서>, 2022년 7월, 165쪽.
다만, 전체 지출 규모에 비해 그렇게 큰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감사원도 보완 대책을 마련하라고 '통보'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보다는 초음파와 MRI 과잉 치료 때문에 재정이 과도하게 지출됐다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감사원은 상복부 등 5개 초음파와 뇌 MRI를 대상으로 표본 점검한 결과, 1,606억원에 달하는 사례가 급여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썼습니다.
다만, 분석의 한계도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1,606억 원 정도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지, 전체가 부당 청구로 볼 수는 없다고 부연했습니다. 즉, 명확한 도덕적 해이의 수준과 수위를 측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2020년 66만여 명의 민간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5,853억여 원의 본인 부담 상한제 환급금을 지급받는 등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받은 본인 부담 상한제 환급금 규모는 계 1조 701억 원으로 확인되었다. 환급금과 민간 실손보험금의 이중 수령 규모가 2020년 기준 최대 5,00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 감사원, <건강보험 재정 관리 실태 감사보고서>, 2022년 7월, 200쪽.
다만, 민간 보험의 이중 수령 논란은 국민건강보험이 설계됐을 때부터 지적돼 왔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본인 부담 상한제는 이미 2004년부터 시행 중인 정책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본인 부담 상한제만의 고유의 문제라기보다는 민간 보험사의 설계 문제 등 다양한 부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케어를 반박하거나 지지하는 데이터들
문재인 케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 건보 재정을 걱정합니다. 재정 문제가 핵심적인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은팀이 건보공단에서 최근 5년 동안 재정 수지 현황을 받아봤습니다.
문재인 케어 이후, 건보 재정 적자가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건보공단은 SBS 사실은팀의 질문에 대한 답변서에 "2018년은 보장성 강화 대책의 본격 시행으로 보험 급여비가 증가해 적자 전환됐다"고 적었습니다. 2020년 이후 흑자 전환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호흡기와 감염성 질환 보험 급여비가 크게 감소해 개선됐다"며 일시적 현상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위 표를 자세히 보면, 보험료 수입이 크게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보험료가 올라갔다는 의미이며, 특히, 정부 지원금 몫이 최근 5년 동안 3조 원 가까이 증가한 것 역시, 국가 재정 부담이 앞으로 커질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지지난해 예측한 향후 40년간의 건강보험 장기 재정 전망을 보면, 2040년 누적 적자가 678조 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반면, 문재인 케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근거로 대고 있습니다. OECD 국가 기준, 보장률이 너무 낮다는 겁니다. 우리 건강보험 보장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려면, 전체 의료비 대비 '공공재원 비율'을 따져봐야 합니다. OECD 통계가 의미하는 공공재원은 건강보험과 정부지원의 합계를 의미합니다.
사실은팀이 OECD 통계 사이트에서 2020년 기준 국가별 건강보험 보장률을 분석, 순위를 매겨봤습니다.
모든 OECD 회원국 통계가 확보된 2020년 기준, 한국은 62.6%로 38개 국가 가운데 36위, 최하위 수준입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OECD 통계 자료를 보면, 2013년까지는 40% 수준으로 OECD 국가 부동의 꼴찌였지만, 오바마 케어가 시행된 2014년 이후에는 80%대로 2배 가까이 올라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크거나 비슷한 국가들은 국기와 함께 따로 표시했습니다. 독일 85.1%, 미국 84.8%, 프랑스 84.7%, 일본 83.4%, 영국 82.8%, 이탈리아 76.1%, 캐나다 75.0%였습니다. 역시 우리보다 높습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 데이터만 보더라도 한국의 의료비는 여전히 가계에 부담을 많이 지우고 있는 겁니다. 민생 안정은 물론, 의료비 부담이 출생률과도 연동되는 만큼 최악의 출생률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보장률 강화를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틀리지 않을 겁니다.
재정 안정성과 건강보험 보장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재정 안정성을 어느 수준에서, 반대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어느 수준으로 맞춰나가야 할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지 지난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정쟁입니다. 재정 파탄, 포퓰리즘, 문재인 지우기, 김건희 여사 보험료 7만 원 논란 등 정치적 구호가 난무하는 작금의 현실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구성하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문재인 케어로 20조 원을 낭비해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났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검증했습니다. 사실은팀이 20조 원의 구체적인 내역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당위적 관점에서 크게 문제될 사업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도덕적 해이의 수위입니다. 문재인 케어의 도덕적 해이가 보장성 강화 효과를 상쇄할 만큼 심각하다면, 정부·여당의 문제의식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감사원 자료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이를 판단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감사원 스스로도 분석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는 만큼, SBS 사실은팀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습니다. '낭비'나 '파탄'과 같은 단어들은 정치적 해석의 영역으로 팩트체크 대상이 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다만, 사실은팀은 문재인 케어를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객관적 데이터를 모두 제시해봤습니다. 시청자분들께서도 이 데이터를 직접 보시고 판단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턴 : 정수아, 강윤서)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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