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사활 거는 스타트업들, ‘오징어 게임’ 사례 참고해야”
[IT동아 권택경 기자] 국내 제과업계의 명실상부 1위 업체는 오리온이다. 2015년 이후 한 두 차례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매출 1위 자리를 수성 중이다. 이렇게 오리온이 제과업계 1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히는 게 성공적인 해외 진출이다. 오리온 대표 상품인 초코파이는 국내에선 이제 추억의 간식 정도로 여겨지지만, 중국에선 결혼식 답례품으로 주고받을 정도로 고급 선물로 인기를 끈다.
이처럼 기업에 해외시장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성공적으로 자리만 잡는다면 뛰어노는 운동장의 규모 자체가 달라진다. 물론 한국도 인구 5000만,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 대국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코 작은 시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확장성 면에서 한계도 뚜렷하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실제로 서울산업진흥원이 해외에 진출했거나 고려 중인 스타트업과 지원 기관 44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내수 시장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시장과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고려하는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많은 사례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경우였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서울산업진흥원이 올해 9월 발간한 ‘서울시 스타트업 해외진출 방안 연구 결과 보고서’에 담겼다.
대기업들에도 어려운 해외 시장 진출을 스타트업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거나 기대보다 낮은 매출을 기록 중이었다. 전체 27개 사 중 해외 진출 성과에 만족하는 스타트업은 9곳에 불과했으며, 12곳은 보통, 6곳은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그나마 만족한다고 답한 스타트업도 뚜렷한 성과를 거둬서라기보다는 법인 설립처럼 해외 진출 사실 그 자체에 대한 만족이었다.
이들은 현재까지의 법인 설립, 인허가 취득, 제품 및 서비스 현지화, 인력 구성, 매출 발생 등 판매를 위한 준비가 완료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구체적으로는 낮은 인지도, 코로나로 인한 운영과 영업상 어려움, 예산 문제, 현지 직원 관리 문제, 현지 문화와 시장 트렌드에 대한 이해 부족, 현지 영업망 부족 등이 꼽혔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은 충분하며, 가격 경쟁력도 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반면 낮은 인지도와 그에 따른 저조한 매출은 한계로 평가했다. 인지도 문제만 해결된다면 매출은 오를 것이란 다소 긍정적 전망을 품고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근본적 어려움 인식해야
스타트업 지원 관련 공공기관 담당자, VC 투자역, 대기업 오픈 이노베이션 및 사내 벤처 담당자들은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은 근본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스타트업은 안 그래도 자금, 인력, 판로가 제한적인데 여기에 해외진출로 인해 현지 시장 정보와 파트너. 외국어 가능 인력 부족이라는 제약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에서도 먹힐만한 차별적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한정된 자원이 분산되면서 국내 사업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악수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들은 국내 대기업과의 협업으로 해외 진출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의 풍부한 마케팅, 영업 인력과 생산 인프라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차별적 기술과 제품이 없다면 해외시장을 위해 국내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건 이점이 크지 않다는 게 대기업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이미 현지에 자리를 잡은 해외 스타트업과 손잡는 게 더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콘텐츠 사업 해외 확장을 위해 우시아월드, 타파스와 같은 현지 플랫폼을 인수하거나, 네이버가 미국판 ‘당근마켓’으로 불리는 포시마크를 인수한 사례도 그 예시다.
제품 스타트업의 경우 바이어를 통한 수출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제조업 중소기업과 유사한 단계를 밟아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나마 사정이 낫다. 특히 최근에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이 보편화되면서 판매 채널 확보가 과거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반면 기술/서비스 스타트업은 이러한 제조업 분야 성공 사례를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기술/서비스 스타트업들에 해법이 될 수 있는 건 해외 대기업 등 현지 파트너와 연계한 실증(PoC) 사업이다. 해외 대기업이 과제를 제시하면, 이를 해결할 기술을 가진 국내 스타트업이 지원해 실증 사업을 진행한다. 결과가 좋다면 이를 바탕으로 추가 투자와 판로 확보가 가능하다. 실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관련 공공기관들은 해외 글로벌 대기업과 연계한 PoC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 중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해외 대기업에 의존하는 수동적 위치에 놓인다거나, 기술 유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대기업과의 PoC 사업에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또한 판매 확대와 같은 실질적 결실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PoC 사업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분명하다. 김진환 서울산업진흥원 창업정책팀 수석은 “해외 PoC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려는 시도”라며 “궁극적으로 더 큰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넷플릭스와 ‘오징어 게임’ 사례를 해외 PoC 사업의 성공 사례 중 일종으로 제시한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흥행했지만 넷플릭스 특유의 계약 구조 때문에 제작진에게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아 불공정 계약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황동혁 감독은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오징어 게임이 처음부터 제작될 수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 규모에 비하면 국내 제작진이 얻은 금전적 이익은 크지 않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과 주연 배우 이정재는 에미상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타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당장 금전으로 따질 수 없는 부가 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이정재는 오징어게임으로 얻은 세계적 명성을 바탕으로 새 ‘스타워즈’ 드라마 주연에 낙점되기도 했다. 이러한 오징어 게임 사례처럼, 해외에 직접 진출해 성공하는 게 어려운 스타트업에 해외 PoC 사업은 추가 투자와 판로 확보 발판을 마련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지원 사업, 행정 아닌 수혜자 중심으로 재편 필요
스타트업들이 해외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선 결국 해외 PoC 사업을 비롯한 각종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제 조사 대상 스타트업들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한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에 대한 만족도는 투자기관이나 민간기업 지원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주로 공공기관 특유의 행정 처리 중심의 사업 구조를 문제로 꼽았다.
현재 공공기관들은 행정 일정에 맞춰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는데 이러한 지원 사업 일정부터가 스타트업의 사정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지원 사업은 쇼케이스나 전시회 같은 단기 성과 중심 활동에 그치며, 핵심 성과 지표(KPI)도 매출처럼 스타트업에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표보다는 단순 매칭 개수와 같은 행정 지표 위주다.
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수행사가 실제 성과를 내기보다는 나중에 보고서에 넣기 위해서 숫자만 채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지원 규모에 비해 서류 작업이 과중하다고 느끼거나 담당자의 전문성, 역량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있었다. 공공기관 담당자들과 VC 투자역, 대기업 오픈 이노베이션 및 사내 벤처 담당자들도 공공기관 지원 사업의 차별성 부족, 행정 중심, 순환보직으로 인한 전문성 부족 등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효율화하기 위해서는 행정 중심주의 탈피와 전문 전담인력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행정 업무 간소화와 더불어 지원 사업 담당자가 최소 5년 이상 업무를 지속하며 전문성을 기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원 프로그램 일정과 주기를 스타트업의 사업 주기에 맞추고, 핵심 성과 지표도 매출 등 수혜 스타트업들에게 실질적 의미를 갖는 지표로 바꾸는 등 수혜자 중심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재편할 필요도 있다고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쟁력이 없는 스타트업을 무리하게 해외에 내보내기보다는 해외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VC 등을 국내에 유치해 이들과 국내 스타트업과 PoC 등을 통한 글로벌 협업 경험을 제공하는 현실적인 방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김 수석은 지적했다.
현재 대동소이한 여러 공공기관의 지원 사업을 각 기관의 강점을 살려 차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KOTRA는 지역 사무소와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펼치고, SBA는 초기 창업자 교육에 집중하는 식으로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서울산업진흥원의 지원 사업 효율화 방향에 대해서 “현재 해외 진출 사업을 이끌고 있는 KOTRA, 무역협회, 창업진흥원 등 유사기관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각 기관 특성에 맞는 지원사업을 구체화하고, 글로벌 역량을 가진 담당자가 3년 이상 같은 근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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