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M&A로 인수하면 소액주주 지분도 경영권 프리미엄 얹어 사줘야
주식양수 M&A로 25% 이상 지분 취득한 대주주 대상
“주주 보호·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금융위원회가 25년 만에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상장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할 정도로 기업의 주식을 대량 인수한 인수자(인수기업)는 인수 지분 외 일반주주가 가진 잔여 지분을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한다.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주식 양수도(주고받기) 방식의 경영권 변경 시 일반 투자자 보호 방안’을 발표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인수·합병(M&A) 계약을 통해 2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 대주주는 인수한 지분을 포함해 전체 지분의 50%+1주의 지분을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예를 들어 M&A 이후 주식을 40% 보유하게 됐다면, 10%+1주를 지배주주와 동일 가격에 의무적으로 공개매수하게 된다.
이는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국내 기업 합병 사례에서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을 거래하는 주식양수도 방식의 M&A는 전체 M&A 방식의 84%를 차지한다. 하지만 다른 방식(합병·영업양수도)의 M&A와 달리 주주총회 결의가 없어도 된다. 또 일반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도 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식양수도 방식 M&A 과정에서 경영진의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아 훨씬 비싼 가격에 매입됐던 반면, 일반 주주들은 M&A 발표 이후 주가 변동성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일반 주주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제도가 도입되면, M&A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기업의 공개매수에 응해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에 보유한 주식을 처분할 수 있게 된다. 만일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이 전체 주식의 50%+1주를 넘게 된다면 인수자는 비율대로 일반주주 주식을 매수하고,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이 많지 않다면 응한 물량만을 매수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게 된다.
세미나에 화상으로 참석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기업의 경영권 변경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의 일반주주들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일반주주가 원하는 경우 보유한 지분을 인수기업에 매각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자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주주 평등’의 원칙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자 한다”고 제도 도입 의의를 밝혔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광일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은 “의무공개매수제도(지배주주 지분 30% 이상 취득 시 100% 의무공개매수)를 도입한 유럽의 경우, M&A 거래 공시 이후 피인수기업 주가가 제도 도입 전보다 약 8%포인트(p) 이상 추가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가 시행되면 인수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지배주주와 불투명한 거래를 통해 일부 지분만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약탈적 M&A도 함께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날 패널 토의에 나선 각계 전문가들은 제도 도입에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공개매수 의무 물량을 50%+1주가 아닌, 100%로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는 대부분 국가가 가지고 있는데 국내에는 1996년 도입이후 IMF 사태로 1년 만에 폐지된 이후 좀처럼 부활하지 않던 제도”라면서 “우리 자본시장의 국제적 정합성 제고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의무 물량을 100%로 확대해 소액주주의 ‘엑시트(exit)’를 도와 약탈적 M&A나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무자본M&A를 원천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도 “주식양수도 M&A 과정에서 경영권 지분에만 매겨진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일반 주주 지분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일이 반복됐고, 해외 투자자들이 이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왔다”면서 “제도 도입으로 일반주주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다는 점은 아주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제도의 첫 발을 뗀 만큼, 도입 이후 실증적 데이터를 근거로 의무공개매수 대상을 확대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다만 제도가 25% 이상 지분을 획득한 최대주주를 대상으로 한 만큼 편법이 발생할 수 있어 이를 방지할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는 “25% 이상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로 제도 적용 대상을 한정했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24.9%만을 취득하는 등 편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방안 마련도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도 “지분 분산 투자 등 우회 편법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제도 실효성이 희석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25~50% 사이 지분을 보유하던 기존 주주가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경우 제도를 적용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또 25% 미만을 취득하더라도 최대주주가 될 수 있고,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경영권 장악 여부에 따라 제도 적용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인수 기업이 자발적으로 100% 의무공개매수를 할 수 있도록 시장 분위기를 만들어가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추후 의무물량이 100%로 확대되더라도 편법으로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식으로 이사회의 광범위한 충실 의무를 확대하고,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행동 활성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성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자본시장법뿐 아니라 세법 등 관련법과 유관제도를 함께 손질해 자발적으로 인수 기업이 100% 의무공개매수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이윤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논의 과정에서 주주권익 보호를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서 “또 제도 도입으로 경영권 분쟁이 줄어들고, 경영권 프리미엄만 보고 M&A를 감행하는 약탈적 인수자들의 시장 진입을 방지해 새로운 인수자 중심으로 기업 가치가 제고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는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어 놓을 뿐, 장기적으로 시장이 자발적으로 100% 공개매수를 하는 방향이 되길 희망한다”면서 “내년 입법화 과정에서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도입 목적은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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