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토로프의 불꽃같은 차이콥스키…작곡가가 숨긴 보석 찾아내다

김용래 2022. 12. 2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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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하키모프 지휘로 스트라스부르필과 내한 협연…다채로운 매력 표현
20일 스트라스부르필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캉토로프 [라보라예술기획/영앤잎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21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젊은 지휘자 아지즈 쇼하키모프가 이끄는 프랑스 국립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1부에서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1번,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부에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라벨의 관현악 편곡 버전으로 무대 위에 올려졌는데, 국내 관객들에게 잘 알려진 관현악곡에 다소 생소하지만 인기 있는 작곡가의 협주곡이 조합된 프로그램이었다.

1988년생인 젊은 지휘자는 열정적으로 악단을 이끌었다. 역동적이었지만 스트라스부르필의 이날 음향적 안정성은 그리 훌륭한 수준은 아니었다. 첫 곡 '카르멘' 모음곡은 경쾌하고 에너지가 넘쳤지만 현악과 관악 파트가 서로 잘 섞여 들지 못하는 인상을 줬다.

전반적으로 금관과 목관 파트는 거칠었고 선율의 매듭이 고르지 못했다. 유려하고도 고즈넉하게 연주되어야 할 '인터메조'에서 특히 아쉬움을 남겼다. '세기디야'에서도 다소 유연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힘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쇼하키모프의 '카르멘'은 남국(南國) 스페인의 온기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채 뻣뻣한 연주가 되고 말았다.

이런 아쉬움은 협연자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의 피아노가 상쇄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번에 가려져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독자적인 매력을 지닌 수작이다.

캉토로프는 2019년 프랑스인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이 작품을 연주해 큰 주목을 받았는데, 과연 그는 확신에 찬 연주로 이 작품의 매력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타건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했고, 고요한 부분에서는 반짝임을 잃지 않았다. 1악장은 연주 시간이 20여 분이 넘는 대곡이다. 주로 관현악이 축제적인 성격의 장조 영역에 머무른다면, 피아노 독주부는 음계 위로 긴장감 있게 상승하려는 리스트 풍의 추동력, 열정과 사색이 결합해 있는 슈만 풍의 긴장감, 러시아 민요풍의 천진함 등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룬다. 캉토로프는 더없이 다채롭게 이러한 색채를 표현했다.

쇼하키모프와 스트라스부르필도 작품의 중심 동기인 셋잇단음표 모티브를 또렷하게 강조하면서 까다로운 관현악 반주부를 매끄럽고도 긴장감 있게 연주해 독주자와 좋은 합을 이뤘다.

2악장은 전곡에서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음악적 장면이다. 독주악기 피아노가 바이올린, 첼로가 이루는 앙상블에 마침내 받아들여져 하나의 실내악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그린다. 한동안 음악은 피아노 없이 관현악으로만 진행되는데 그 서정성이 인상적이다. 시종일관 제1 바이올린 솔로(악장)와 첼로 솔로(수석)는 이중 협주곡을 방불할 만큼 뛰어난 표현력을 선보였다. 변화의 폭이 매우 큰 가운데 부분에서도 피아노와 목관악기 솔로의 앙상블이 우아하고 세련되게 표현됐다.

서정적인 현악 이중주와 고독한 피아노의 독주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 2악장의 말미에서는 다시 금관에서 중심동기를 연주하며 1악장을 회상시키는 것 등 전체적인 연주가 매끄럽고도 명료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일 예술의전당서 무대인사하는 지휘자 쇼하키모프 [라보라예술기획/영앤잎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3악장은 민속적이고 유희적이며 기교적이다. 캉토로프는 기교와 파워를 유감없이 드러내면서도 그때그때 다채로운 표현력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다소 빠른 듯한 템포였음에도 악단은 독주자가 만들어내는 열정적인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해 밀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피날레를 연출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매력을 새로이 발견하게 해 준 탁월한 연주였다.

2부에서는 무소륵스키와 라벨의 인기 있는 관현악곡 '전람회의 그림'이 연주됐다. 쇼하키모프의 해석은 다소 직선적이었고, 열정적이었지만 무난한 연주 수준을 넘지 못했다. 트럼펫과 바순 등에서 실수가 있었고, 현악 파트의 배음 또한 불안정했다. 사실 이런 실수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전반적인 음향의 '블렌딩'이 조화롭지 못하여 라벨의 관현악법의 묘미를 충분히 느끼기 어려웠던 점이다. 또 템포, 셈여림, 음조 등이 너무 평면적이어서 '카타콤'에서 '키예프의 대문'으로 이르는 음악적 고조 과정에서 그에 걸맞은 음악적 장관을 연출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쇼하키모프와 악단은 앙코르로 연주한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의 '바카날'과 비제 '아를의 여인' 모음곡 2번의 '파랑돌'에서 마침내 유연하고 자유로운 그들만의 매력을 발산해냈다. '전람회의 그림'에서의 아쉬움을 씻어줄 만한 매력적인 연주였다. 젊은 지휘자, 젊은 피아니스트의 열정은 개개의 표현상의 아쉬움을 넘어 콘서트홀을 찾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바깥은 추웠지만, 장내는 따뜻했다. 만일 음악이 온기와 기운을 전달하는 일이라면, 캉토로프, 쇼하키모프, 스트라스부르필은 그 본질적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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