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대신 화장실 찾아가...깨끗한 물이 만든 프라이버시 [골든아워 in 케냐 ②생존까지 위협하는 위생문제]
‘지역사회 주도’ 접근법이 주민의식 바꿔
‘화장실=개인공간’ 인식...손씻기 교육도
화장실 기자재 마을서 직접 공수 현지화
문 위 ‘노란 물통’ 설치 비누 비치 가정도
정부인증에 다른지역 전파 ‘순기능’ 기대
섭씨 38도가 넘는 12월의 날씨. 초가집을 짓고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사막에서 살아가는 투르카나 지역의 한 마을에는 가정 한 곳당 화장실 한 곳이 생겼다. 깨끗한 물을 얻게 되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프라이버시’의 개념과 손 씻기 등 위생에 대한 인식이 함께 생겼다.
7일(현지시간) 공동취재단은 케냐 투르카나주(州)의 주도 로드워에서 약 5km 떨어진 난양아키피마을(Nanyangakipi village)의 나크와메키(Nakwamekwi community unit)를 방문했다. 75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난양아키피마을은 기후변화와 가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더불어 이웃 국가인 우간다에서 발병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협과도 싸우고 있다. 위생문제가 지역사회의 생존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취재진이 찾은 나크와메키의 화장실은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화장실 바닥에 작은 구멍을 낸 재래식 시스템이다. 두 칸의 건물에 한쪽은 화장실, 한쪽은 씻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화장실 바깥에는 노란 물통이 걸려있다.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위생교육도 같이하고 있다. 비누가 배치된 가정도 있었고, 비누를 구입할 수 없으면 재를 이용해 소독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이 마을은 우리 정부가 설치한 보어홀(Borehole·관정 시스템)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인 만큼 여유가 있는 집은 오물이 가득 차면 사람을 불러 퍼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차게 되면 바닥을 덮어버리고 다른 곳에 새로 짓는다. 거름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주민의 영양상태가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거름으로 이용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2019년부터 난양아키피 마을에서 노상 배변 근절(ODF·Open Defacation Free)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주민이 주도하는 위생 및 위생 행동 변화 접근법인 CLTS(Community-Led Total Sanitation)를 토대로, ‘프라이버시’ 개념을 통해 노상 배변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고 이에 대한 마을 주민의 동의를 얻은 후 화장실을 설치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동의와 ‘현지화’다. 지원 단체는 화장실을 설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설치에 필요한 기자재는 전부 마을에서 공수해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 이질감을 최대한 줄였다.
모든 가구가 노상 배변을 중단하고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면 주 정부가 공중보건팀을 파견해 현장을 확인한 뒤 ODF를 인증하고, 중앙 정부 사이트에 등록한다. 난양아키피마을은 150가구 중 90%인 135가구가 ODF 인증 등록이 완료됐다. 2개의 학교, 1개의 보건시설, 2개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 마을은 이제 ‘노상 배변’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ODF 인증을 통해 위생 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은 무엇보다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1차 목표인 ‘인증’에 성공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위생 개선과 함께 다른 마을로 전파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협업해 ODF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유니세프는 이 사업을 통해 위생 인식 수준이 계속해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난양아키피 마을과 같은 다른 마을 사회에서 노상 배변 중단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고, 위생 시설에 대한 투자가 더욱 수월해지기도 한다.
박미 코이카 케냐사무소 부소장은 “기존에는 노상에서 볼일을 보다보니 아픈 사람이 많았는데 화장실이 설치되고 많이 줄었다고 한다”며 “이외에도 설거지도 위생적으로 하게 됐는데 햇빛에만 잘 말려도 소독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밝혔다.
동아프리카 지역에 40년여년 만에 찾아온 역사상 최장의 가뭄은 사막의 최빈곤 지역에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낙타와 염소 등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 투르카나족은 어렵게 물을 발견하면 사람보다 동물에게 먼저 먹였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20km 거리를 걸으며 물을 찾아야 했다. 물을 긷는 여자아이들은 도와주겠다며 유인하는 성인 남성들의 범죄 타깃이 됐다. 영양상태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마실 물조차 부족하니 위생에 대한 인식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 극심한 가뭄은 깨끗한 물을 마실 당연한 권리와 인권을 빼앗았다.
케냐 투르카나=외교부 공동취재단·최은지 기자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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