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 연주자 황민왕, “‘요즘 굿’을 통한 위로…우리의 메시지 전할 것”

2022. 12. 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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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블랙스트링, 음악그룹 나무
활동 영역 확장하며 ‘최신 전통음악’ 시도
뿌리와 전통 위에 피어난 ‘요즘 굿’
우리 세대 화두는 음악적 즐거움
황민왕이 보여주는 활동은 다양하다. 블랙스트링, 음악그룹 나무의 멤버이고, 개인 창작 활동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장했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채가 아닌 두 손으로 장구를 치고, 자연의 소리 위로 인공을 얹는다. 정해진 행로를 벗어난 ‘이탈’은 새로운 곳을 향하는 ‘일탈’이 됐다. 전통악기 위로 전자기타와 베이스 소리가 들어오자 미묘한 궁합이 생긴다. 이질적인 악기들의 조합은 개척자처럼 새 길을 갔다. ‘전통의 변주’ 혹은 ‘전통의 해체’, ‘전통 위에 피어난 새로운 창조’. 이런 상투적인 수사로는 타악 연주자 황민왕의 음악 세계를 모두 설명하긴 어렵다. 본질은 의도가 아닌 ‘음악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동시대성을 담보한 음악…. 이런 표현은 너무 거창하잖아요. 지금 내가 하는 음악이 ‘현대적 컬래버레이션’이라거나, 동시대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재밌어서 하는 것, 새로운 악기의 사운드가 필요해서 하는 거였으니까요. 동시대성을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선 염두할 수 있겠지만, 우선순위는 늘 좋은 작품, 좋은 음악이었어요.”

지난 몇 년 사이 전통은 빠르게 진화했다. ‘전통의 원형’을 품은 새로운 시도가 경계를 넘어 날아올랐다. 록 사운드를 입은 생경한 주술(악단광칠), 전통악기가 어우러진 포스트 모던록(잠비나이), 강렬한 비트를 더한 종묘제례악(해파리), 중독성 있는 팝 사운드의 판소리(이날치)가 대중 곁으로 다가왔다. 2010년 이후 완전히 달라진 전통음악의 흐름에 황민왕도 있다.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컬래버레이션은 저희 세대 음악인에겐 진부한 표현이에요. 우리에겐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전 세대의 화두가 서로 다른 토양에서 자라온 것이 이뤄내는 화학작용과 호흡이었다면, 저희의 화두는 즐거움이에요.”

황민왕이 보여주는 활동은 다양하다. 블랙스트링, 음악그룹 나무의 멤버이고, 개인 창작 활동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장했다. 다가오는 연말엔 서울남산국악당(12월 30~31일)에서 남산초이스 ‘황민왕의 별신굿’으로 관객과 만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보내는 축원과 기원의 굿판이다. 공연 준비에 한창인 황민왕은 “종교적 측면을 넘어 소통하는 마을 축제로의 굿 음악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별신’이라는 말은 특별히 신을 모신다는 의미예요. 일년에 한 번 정도 마을마다 날짜를 정해서 신을 모셔요. 남해안 별신굿은 통영 거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마을 제의예요. 마을 단위로 동네가 평안하기를 비는 제의를 경상도에선 별신굿, 경기도에선 도당굿이라고 해요.”

공연의 1부는 ‘전통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무대로 꾸민다. 짧게는 3박 4일, 길게는 7박 8일 이어진 마을 축제를 무대로 올린다. “성황굿을 짧게 축소해 보여주는 작업”이다. 2부는 무속음악을 바탕으로 그간 이어온 창작 작업의 연장이다. 황민왕은 “그동안 해오던 것이 아닌 공연에 맞춰 새로운 곡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장구 대금 피리와 같은 전통악기에 전자기타와 베이스가 들어온다. “요즘엔 조합상으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성이에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요새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타악 연주자 황민왕은 스스로의 ‘음악적 정체성’은 “별신굿에 있다”고 말한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 ‘음악적 뿌리’ 별신굿…그 위로 피어난 ‘요즘 굿’

황민왕에게 이번 공연은 조금 더 각별하다. ‘전통의 세계’에서 성장한 한 음악인의 뿌리와 진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의 ‘음악적 정체성’은 “별신굿에 있다”고 말한다.

‘우연’은 한 사람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끌어들인다. 황민왕이 ‘전통음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한산도에서 자라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통영으로 ‘유학’ 온 그는 고딩 시절 난데없이 탈춤 동아리에 들었다. “동아리에서 모집을 하러 왔는데 아무도 가입하지 않더라고요. 어쩐지 좀 안돼 보여 들어갔는데 함께 간 친구들이 말도 안 하고 모조리 빠져서 저만 남게 됐어요. 책임감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계속 이어왔어요.”

탈춤을 배우던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물놀이였다. 사물놀이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대학 진학을 염두했다. 마땅히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 시절 통영에서 뭔가 할 수 있는 데는 ‘남해안 별신굿 보존회’ 뿐이었어요.”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었다. “장구치는 사람이 노래하는 걸 그 때 처음 봤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별신굿을 배우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에 입학했다. 학교에선 농악, 무속, 탈춤을 모두 섭렵했다. “돌이켜보면 무속음악이나 무속 제의가 옆에 없던 적은 없어요. 그 사이에 주로 어떤 일을 하느냐의 차이였죠.”

2016년 그의 ‘뿌리 찾기’가 시작됐다. 황민왕이 해온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 ‘이음굿 프로젝트’가 출발한 해다. 무속과 닿아있는 소재를 찾아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게 된 시기였다. “전통음악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배운 것도 무속음악이었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주위의 인식도 그렇고, 제가 잘하고 싶은 것도 무속음악이더라고요.” 2016년 ‘컴컴한 숲의 방랑자’를 시작으로 ‘소대수 어른굿’(2017), ‘윤두리굿’(2020)으로 이음굿 프로젝트는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새 굿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굿판에 가서 굿을 들으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요. 말이 통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럼 말이 통하는 굿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새 굿’의 작업 동기는 ‘보존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그 안엔 “고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한다. 그는 “판소리든, 소크라테스든, 단테의 ‘신곡’이든, 그 이야기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옛날 작품인데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거와 오늘을 관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가져와 굿의 어법에 맞게 바꾸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어요.”

전통음악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무가는 더욱이 낯설다. 한국인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언어가 꽉 채워져 다가서려 해도 멀어지기 일쑤다. 황민왕의 ‘새 굿’은 친절하다. 굿이라는 크고 단단한 그릇 안에 ‘요즘 감성’과 ‘세계관’을 넣었다.

“제가 진행하는 국악방송 라디오에선 전통음악만 틀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엉뚱한 신청곡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럼 그 곡을 소개하며 다른 전통음악으로 보내드려요.” 청취자의 신청곡 이미자의 ‘봄날은 간다’는 그의 라디오에선 ‘흥타령’으로 나온다. “아깝다 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 가니/ 오는 백발 어찌 할거나”라는 ‘흥타령’의 가사가 ‘봄날은 간다’와 맞닿았다.

“제가 하는 건 이런 방식이에요. 말이 어려워 지금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빼는 것이 아니라, 요즘 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시도하는 거죠.”

그의 시도는 다양성을 확보하고, 시대와 소통한다. 황민왕은 “판소리를 비롯한 많은 전통예술의 언어는 한문이 많아 지금의 세대에겐 어렵게 다가온다”며 “무속음악은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어제와 오늘을 관통하는 ‘언어의 치환’에 ‘과거의 굿’은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현재성’을 얻으니 그것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의도하진 않았을 지라도, 그의 작업은 장르로서의 굿 음악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춘다. 물론 스스로는 “수천년 동안 지내온 굿을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단지 고전의 도움을 받아 새 굿을 만드는 과정인 거예요. 이 작업들이 전통 굿의 자리를 대체하기 보다는 전통 굿에 다가서기 위한 낮은 문턱 정도에 해당하는 거죠.”

■ “지금 국악계는 과도기”…다양성의 가치·음악의 본질 지켜야

아주 오랜 시간 국악은 어렵다는 편견,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원치 않게 생겨난 프레임은 이곳의 예술가들에게 숙제를 안겼다.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갈망이 한결같이 자리했다. 황민왕은 “지금의 국악계는 과도기”라고 봤다.

“지금 국악계는 ‘욕쟁이 할머니 식당’ 같은 느낌이 있어요. 대중에게 자꾸 강요를 하게 되는데, 그건 국악은 어렵다는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요. 정작 예술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을 만들 땐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어쩌면 그건 섣부르게 대중을 폄하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하는 것이 정말 좋다면 이것이 어렵든 아니든,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좋아할 거라는 음악의 본질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해요.”

그의 일련의 작업들은 이러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음악”이었다. 물론 ‘경우의 수’는 있다. 관객과 창작자의 마음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즉흥음악을 할 때 관객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띄는 걸 목격할 때가 있어요. 물음표가 생겨 그 물음표가 기억에 오래 남으면 성공인데, 이 경우엔 관객이 힘들어하는 물음표인 거죠. ‘이게 뭔가’ 싶은 의문, 옆자리 관객의 박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요. 그 물음표를 마침표든 느낌표든 다른 부호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가며 음악을 하고 있어요.”

황민왕의 최신작이 될 이번 공연도 ‘좋은 음악’,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 위에 있다. 그가 꾸준히 이어온 작업과 공연 방식이 ‘지금’을 만나 새롭게 읽힌다. 이 안에서 ‘시대 정신’을 찾는 것은 극구 사양하나, 의미는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전통의 방식을 따르는 1부에선 관객과 함께 치유와 위로의 시간을 갖는다. “굿을 할 때 축언을 하는 부분이 있어요. ‘자식이 없는 집은 자식을 생기게 해주시고, 수명이 짧은 집은 수명을 길게 해주세요’. 이렇게 개괄적으로 나와있어요. 그런데 사실, 개개인의 소원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일 때가 많아요.” 황민왕이 취하는 방식은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이다. 다사다난한 1년을 보낸 관객들에게 공연 전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쪽지를 받아 공연에서 들려준다. 이러한 방식이 공연의 즐거움과 공감대를 높인다.

“다른 사람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이 쌓여요. 이런 과정을 통해 난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렇게 우리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그게 요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익명성이 보장된 시대’에 등장한 “실명 공개의 공연”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황민왕은 “굿을 할 땐 이름이 공개되는데, 그것이 사회적 통념의 윤리와 양심을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2부에선 콘서트의 형식으로 태어난 무속 음악의 즉흥성도 만날 수 있다. 주선율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주”가 일어나고, 음악은 새로운 세계로 관객을 데려간다. 개개인의 ‘비르투오소’적 면모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이 공연의 관전포인트이기도 하다.

“주법의 변화, 이질적 악기의 사용은 늘 해오던 거예요. 전통 선율에 전자 악기가 들어올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저희에겐 숙제이고, 관객에겐 호기심이 되는 것 같아요. 이전엔 양심있는 연주자가 되자는 것이 신조였는데, 30대 이후론 ‘표값을 하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됐어요. 이번 공연에서도 연주를 참 잘한다, 표값이 아깝지 않은 좋은 질의 연주였다고 느끼게 될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의 전통음악계는 용광로와 같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실험과 창발성이 들끓는다.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었고, 경계를 밟고 넘어선 이들의 음악이 대중과 친해졌다. 그 안에서 ‘요즘 전통음악’을 함께 이끄는 황민왕도 끊임없이 고민한다.

“최근엔 대중과 가까워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예술가가 있는 반면 꿋꿋이 전통을 지키는 예술가들도 있어요. 새로운 것이 주목받지만, 전통만 꿋꿋하게 하는 예술가들이 최소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가짓수가 많이 생겨 각자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이 존재하고, 대중은 자기 기호에 맞춰 음악을 고를 수 있는 시장이 된다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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