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휘발유와 경유 가격 역전의 진실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4월 말까지 휘발유에 적용하는 유류세 인하폭을 현행 36%에서 25%로 축소한다. 당장 휘발유의 소비자 가격이 리터당 99원 인상된다. 휘발유‧경유‧LPG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동일한 비율로 인하해서 발생한 휘발유와 경유의 ‘비정상적인 가격 역전’을 바로잡겠다는 어설픈 시도다. 그렇다고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역전이 당장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12월 19일 경유의 전국 평균 소비자 가격은 리터당 1754원으로 휘발유의 1539원보다 무려 215원이나 더 높기 때문이다.
정부의 조치로 경유가 다시 ‘값싼 서민연료’의 자리를 되찾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경유 값이 휘발유보다 반드시 싸야 한다는 자연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류세를 통한 정부의 어설픈 개입이 자칫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서민들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도 있다. 유류세에 대한 정부의 반복적인 땜질 처방이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무섭게 덮쳐오고 있는 전 지구적 에너지 위기의 높은 파고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절실하다.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은 절대 그런 대안이 될 수 없다.
경유는 ‘서민용 연료’가 아니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역전이 휘발유의 유류세를 더 많이 깎아주었기 때문이라는 일부 언론의 지적은 터무니없는 억지다. 물론 작년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가 휘발유보다 경유에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교육세‧주행세‧부가세를 합친 ‘유류세’는 휘발유 820원과 경유 581원으로 차등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7월 유류세 인하폭을 37%로 확대하면서 유류세 인하액의 격차가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발유와 경유의 유류세 인하액 격차는 리터당 92원에 지나지 않는다. 리터당 215원에 이르는 주유소에서의 가격 역전은 유류세 인하액의 격차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싸다는 소비자의 기억은 정확한 것이다. 그런 가격 구조는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모든 정유사를 국영으로 운영하던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름값을 ‘고시’하던 1972년 7월의 사정도 그랬다. 휘발유가 리터당 51원이었고, 경유는 그 절반 수준인 26원이었다. 그렇다고 경유가 ‘서민연료’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한 푼이 아쉬운 달러를 투입해서 수입했던 기름은 서민과는 거리가 먼 ‘고급 연료’였다. 더욱이 휘발유는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낭비적 사치품인 승용차에 사용하는 연료였다. 휘발유에는 사치품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를 부과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름 소비를 억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당시 가장 절박한 과제였던 국가 경제 부흥에 필수적인 ‘산업용 연료’였던 경유의 경우가 그랬다. 산업 활동에 꼭 필요한 트럭‧버스‧기관차‧중장비가 모두 경유를 연료로 사용했다. 그런 경유를 비싸게 공급하면 물가가 오르고,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도 없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경유를 싸게 공급할 수밖에 없었고, 소비자들은 경유를 ‘값싼 기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화학적으로 경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등유의 사정도 비슷했다. 등유는 가정용 난방과 취사에도 사용했다. 그러나 난방용 등유는 일부 상류층의 호사였다. 요즘은 고약한 냄새 때문에 찾아보기 어려워진 ‘석유난로’와 ‘석유곤로’도 그 당시에는 뒤늦게 등장한 사치품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아파트도 난방용 연료로 등유가 아니라 ‘중유’(重油)라고 부르던 벙커C유를 썼다. 경유가 ‘서민 연료’였다는 주장은 분명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불확실한 주장일 뿐이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
교통세를 처음 도입했던 1994년 이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유의 세율은 최대 26%를 넘지 않았지만, 휘발유에는 무려 195%의 무지막지한 교통세를 부과했다. 교통세를 종량제로 전환한 1996년에도 경유(48원)에는 휘발유(345원)보다 리터당 297원이나 낮은 세금을 부과했다.
휘발유와 경유의 세금 격차는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진 1999년 이후에는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리터당 455원이었던 휘발유의 교통세를 691원으로 52% 인상하면서, 경유의 교통세는 85원에서 160원으로 88%나 인상했다. 그런데도 휘발유에 무려 리터당 531원이라는 더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휘발유에 부과한 과도한 교통세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2000년에 ‘첨가제’와 ‘대체연료’라는 기묘한 명분을 앞세워 등장했던 ‘세녹스’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과도한 휘발유 값에 지친 소비자들은 세녹스에 열광했다. 결국 정부는 휘발유의 교통세를 61원이나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알려진 경유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경유에 부과하는 교통세를 116원이나 인상했던 결정에 대한 반발도 심각했다. 운송사업자들의 거센 반발 때문에 유류세환급 제도를 도입해야만 했다.
10년 한시적으로 도입되었던 교통세가 2007년부터 ‘교통‧에너지‧환경세’로 전환되어 지금까지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황당한 일이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교통‧환경 인프라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당초의 핑계는 기만적인 것이었다. 한 해 20조 원이 넘는 유류세는 정부의 입장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효자 세금이다.
유류세는 정유사가 기름을 출고하는 시점에 국세청에 직접 납부한다. 정유사는 자신들이 속절없이 대납(代納)한 유류세를 소비자로부터 주유소를 거쳐서 회수해야 한다. 국세청이 자신들이 해야 할 유류세 징수 업무를 정유사에게 떠넘겨버린 것이다. 물론 정유사가 대납한 유류세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고스란히 정유사의 몫으로 남게 된다.
소비자가 유류세 납부 사실을 확인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것도 국세청의 고약한 꼼수다. 정유사가 납부한 유류세는 소비자에게 발급하는 영수증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절차가 복잡하거나 어려워서가 아니다. 국세청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입장에서는 정유사가 더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소비자의 오해가 크게 나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유류세를 조정할 때마다 주유소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잘못된 징수 제도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이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정유공장에서 더 비싼 값에 공급하는 경유가 주유소에서는 더 싼 기름으로 둔갑해버린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앞장서서 시장과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소비자의 인식을 바로잡고,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 난방용 등유와 산업용 용제(솔벤트)를 차량용 경유로 둔갑시켜서 유류세를 납부하지 않은 ‘가짜 기름’의 문제도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 때문이다.
가격 역전의 진실
실제로 휘발유보다 소비자 가격이 낮았던 경유의 가격이 본격적으로 치솟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였다. 경유를 휘발유보다 더 비싸게 판매하는 주유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피넷의 자료에서 본격적인 가격 역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4월 2째주부터였다. 경유의 공장도 가격이 리터당 1816원으로 1808원이었던 휘발유의 공장도 가격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12월 1째주의 공장도 가격의 격차는 리터당 174원으로 늘어났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진 것은 유류세 인하액의 격차 때문이 절대 아니다. 정유사의 입장에서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경유의 공급이 줄어들고, 소비가 늘어난 현실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사실 경유가 휘발유보다 쌌던 현실은 우리 정부가 억지로 만들어낸 우리만의 고약한 특수 상황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에너지 밀도가 더 높은 ‘고급연료’이고, 그런 경유가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휘발유와 경유의 ‘원가’에 대한 논란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휘발유‧경유는 등심‧갈비와 마찬가지로 원가가 서로 결합되어 있는 대표적인 ‘결합원가’ 제품이다. 부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자동차와 달리 휘발유‧경유는 원유를 증류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산된다. 정유사가 휘발유‧경유의 생산 비율이나 판매 비율을 임의로 조정할 수도 없다. 휘발유의 소비가 줄어들면 경유의 생산도 줄일 수밖에 없다. 결합원가 제품의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일은 난해한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어설픈 정치적 이유로 섣부르게 끼어들 일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공급 가격은 싱가포르 석유시장에 연동되어 있다. 정유사가 국제 시장의 가격을 무시하고 서민들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경유를 더 싸게 공급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서민들이 경유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경유를 사용하는 고급 승용차와 SUV도 적지 않다. 자칫 정유사가 국제 시장의 가격 동향을 무시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자유무역이 일반화되어 있는 국제 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되었던 국제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던 중에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국제 에너지 시장이 대혼란에 빠져들면서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탄소중립과 환경오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에너지 밀도가 더 높은 경유의 소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의 개편이 시급하다.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폐지하겠다든 2025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기름값에도 시장의 기능이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유류세를 통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금지시켜야 한다. 소비자가 납부하는 유류세를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주유소의 영수증에 유류세 액수를 적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정유사가 유류세를 대납하는 고약한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류세의 탄력적 운영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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