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기 위해 지옥으로 걸어가다

한겨레21 2022. 12. 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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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는' 일이 끝나면 드디어 출판평론가의 시간이다.

눈 밝은 선후배 평론가들이야 일사천리겠지만, 일주일마다 당도하는 적잖은 책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그것도 내 취향과 매체 성향까지 맞춰 책을 찾아내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가히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짧은 시간, 적은 지면에 책을 소개해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제목부터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다 읽은 뒤에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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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일]출판사로부터 ‘받는’ 일 다음으로 찾아오는 책 ‘선택’의 시간
2022년 12월 둘째 주에 당도한 신간들.  
2022년 12월 둘째 주에 당도한 신간들.  

책을 ‘받는’ 일이 끝나면 드디어 출판평론가의 시간이다. 아니, 선택의 시간이다. “오롯한 취향과 성향, 개성을 가진 존재”이다보니 그런 게 아니라, 기고하는 매체나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읽고 소개해야 할 책과 당분간 관망해도 될 책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눈 밝은 선후배 평론가들이야 일사천리겠지만, 일주일마다 당도하는 적잖은 책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그것도 내 취향과 매체 성향까지 맞춰 책을 찾아내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가히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지옥을 경험하면서도 얄팍한 생각 하나가 늘 똬리를 튼다. 누가 봐도 한 주간 출간된 책 중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게 마련이다. 더하여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략 두어 달을 주기로 베스트셀러의 기운이 느껴지는 책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책은 내가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어느 매체의 신간 리뷰로,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게 마련이다. 잠깐,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라고 말했을 뿐 소개하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 일이야말로 각종 책을 보내주는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이 대목에서 좀더 솔직해지자. 마음 한구석에 있는 ‘내가 이렇게 발 빠르게, 이런 신간까지 섭렵하는 사람이야’라는, 일종의 출판평론가로서 존재감을 보통 그렇게 표출할 수밖에 없다. 신간을 읽는 것뿐 아니라 이 책은 이런저런 맥락을 가진, 즉 이런 트렌드를 담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평론가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고 젠체하고 싶은 욕망도 그렇게 흠뻑 충족된다. 더 솔직해지면 그렇게 존재감을 표출해야 새로운 리뷰 지면도, 방송 프로그램도 맡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 젠체하고 싶은 욕망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2022년 가을 개편 때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 대목을 읽고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오지 않으면 어쩌지, 살짝 고민했다.) 출판평론가 직함으로 일하면서 적게는 서너 곳, 많을 때는 열 곳 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당연히 훗날 (전문용어로) ‘돌려막기’도 한 적이 있었지만 같은 책을 같은 주에 소개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짧은 시간, 적은 지면에 책을 소개해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제목부터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다 읽은 뒤에야 소개했다.

방송에서 물러나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고, 신간을 더 찬찬히 애정을 담아 읽게 됐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던 어떤 이의 말을 믿지 않지만 그럴 때도 있음을 알았다. ‘저급한 현실 인식, 과도한 의미 부여.’ 자의 반 타의 반 평론가로 살면서 늘 경계했던 생각이다. 그대로 지키며 살지는 못했지만 늘 경계하려 애쓴다. 하지만 무너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건 역시나 책이다. ‘내돈내산’의 책들이 그렇고, 여러 출판사가 보내준 책들이 그렇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은 출판평론가에게, 책은 빚이자 빛이다.

글·사진 장동석 출판평론가·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책의 일: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소개합니다. 직업군별로 4회분 원고를 보냅니다. 3주 간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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